성경에 담긴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 / 산들바람

by 나누리 posted Apr 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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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바람

1. 엘리사 전승의 진실


몇 년 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구약 폐지론을 주장하다 개신교와 가톨릭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의도가 이해되었고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싶기도 합니다.
성경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성경의 기록 전체를 신의 전갈로 간주하는데서 오는 폐해 때문입니다.


성경은 수천 년 인간사의 온갖 비극과 희극, 욕망과 질투, 음모와 암투, 그로 인해 벌어지는 처절한 삶의 장면들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하지만 성경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은 당시 사람들이 만나고 인식한 하나님이 얼마나 무섭고 무자비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성경의 거룩함에 동참하려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음은 그런 당혹스런 기록 가운데 자주 언급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며 놀려대었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콤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사십 이 명을 찢어 죽였다.”
(공동번역 열왕기하 2장 23,24절)



이 구절은 선지자 엘리사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나타내는 사례로 기록되었지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정리된 신약성경의 신관은 물론이고 사랑보다는 법과 정의를 먼저 요구하는 구약성경의 신관으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사람을 놀렸다는 이유만으로 42명의 생명을 몰살시키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게다가 희생자들은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도 다 알만한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은 이 구절을 근거로
“목사가 잘못이 있더라도 교인이 함부로 목사를 비판해서는 안된다. 목사의 잘잘못은 하나님께서 직접 물으실 것이다.”
라고 설교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우님들은 이 구절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믿었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 교우님들 중에는 이 기록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믿는 분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보다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교우님들은 아마도
“그 때는 율법의 시대였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므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런 일을 하시지는 않는다.”
는 한국 교회의 보편적인 해석을 받아들이며 불편한 마음을 달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이 기록이 문자 그대로 실제 사건일 수는 없지만 당시에 있었던 비극적 사건을 시대의 한계와 무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신의 징계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전승을 타고 전해져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엘리사 전승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전승이 구전으로 유통되거나 단편으로 기록될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사제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고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성경에 삽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오늘날 어떤 스캔들을 일으킨 일부 목회자들이 해명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하여 이 구절을 들이대며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듯이 말입니다.

   
  2. 성경은 정련되기 이전의 원석(금광석)과 같습니다.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성서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제 가능성이 큰 해석을 무시해 버리면 진실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엘리사 전승을 시대적 한계와 무지에 사로잡힌 당시 사람들의 한계로 해석하는 진보적 성서학자들의 견해는 가능성 있는 해석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지배계급의 의도적 왜곡에 대한 가능성 역시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학자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성경 안에 시대 상황에 따른 한계는 있어도 고의에 의한 왜곡은 없다고 믿고 싶은, 또는 그렇게 믿거나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적인(?) 사정이 그들 진보 신학자들에게 내제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는 담겨있지만 고의적 왜곡은 없는 진실의 경전’과 ‘시대의 한계 뿐 아니라 고의적인 왜곡까지 담겨 있기에 진실과 허구를 반드시 가려내야 하는 경전’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습니다.


성경의 오류나 고의적 왜곡에 대해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학자들의 시각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자면, 성경에 대한 애정으로, 또는 교우님들이 받을 충격을 고려하여 보다 유연한 해석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해석자의 그런 유연함(?)이 결과적으로 성경에 관련된 진실을 덮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에 남아나는 가치가 도대체 무엇인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면 우리의 신앙도 무너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염려하는 교우님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옛 신앙을 잃을 수 있으나 오히려 새롭고 참된 바른 신앙을 갖게 됩니다.
제가 교우님들께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몸소 가르쳐주신 그 신앙, 복음의 원형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아, 그날이 속히 오기를...


결론적으로, 성경은 이삼천년 전의 시대적 정황 아래 기록되었기에 때로는 시대의 한계와 기록자의 인식의 한계까지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지배계급이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기록도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정금 자체가 아니라 정금을 포함하고 있는 금광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원석에서 정금을 얻어내려면, 즉 성경에서 진정한 신의 말씀을 들으려면, 이 금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펄펄 끓여 모든 이물질을 분리해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어떤 교리적 전제에도 매이지 않고 과학과 이성에 의해 성경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열린 신학’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혹독하고 정직한 정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비로소, 성경 안에 섞여있는 사람의 말과 정금과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려서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행복한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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