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사렛 사람)

by mangsan posted Nov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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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사람

마태복음 묵상3

2:13-23

 

1.

 

동방박사들이 다녀간 후 헤롯은 베들레헴 근방의 두 살 이하 아기들을 살육했고, 이에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헤롯의 사망을 전하고 다시 이스라엘로 올라오기를 전하자 요셉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유대를 피해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서 정착했고, 이로써 아기로 하여금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이루게 되었다.

 

2.

 

나사렛 사람이란 무엇일까? 왜 마태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말했을까? 나사렛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떤 존재적 문양을 가지는 것일까?

나사렛 동네는 산과 동산의 지경이 높은 곳이다. 그래서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눈이 부시게 파랗게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항상 수많은 배들이 오가며, 바라보는 사람들로 경이감과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 언덕 위에서 그렇게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또 남쪽 구릉지 아래로는 그 옛날 조상들이 다니던 큰길 해변길이 펼쳐져 있다. 그 길은 많은 상인들이 통행하기도 하고 또 수많은 전쟁의 물자와 군인들이 통행하던 길이기도 하다. 아기 예수는 그 길을 통해 저 멀리 애굽에까지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했었다. 그 길들과 큰 바다를 바라보며 아빠 엄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아기 예수가 성장하면서 꿈과 이상을 자라게 하고, 그리고 항상 그에게 들려오는 근원의 아버지 여호와의 말씀과 함께 예수의 정체성을 자리잡게 했을 것이다.

언젠가 예수께서 성년이 되신 다음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가나에 있는 친척의 혼인잔치에 가신 적이 있다. 이 때에는 이미 아버지 요셉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예수의 자리가 집안의 가장의 자리였나보다. 그 분은 아버지 요셉에게 배운 목수 일을 하면서 동생들과 어머니를 부양했을 것이다. 때로는 고달픈 목수일 가운데서 자신의 자리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기도 하며, 짬을 내어 언덕에 올라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임하는 근원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예수께서는 나사렛 사람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나사렛 사람은 거룩한 창조주께서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가장 소극적이며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역창조의 또 다른 의지를 보이신 존재의 어법이다.

삼십대에 이르러 예수께선 나사렛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쉬웠을까? 주께서는 이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처절하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셨다. 여린 감성을 가지신 분이 아니신가? 마치 저 지중해의 푸른 물처럼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가지셨던 분이 아니신가? 그냥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그리고 이웃과 그렇게 평온을 누리시기를 원하시지는 않으셨을까?

하지만 그 분을 움직인 것은 당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더 큰 가치와 그로 인한 그분의 존재의 이유였을 것이다. 나사렛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더 큰 근원적 사랑을 위하여 그 분은 그렇게 나사렛 언덕을 넘으셨다.

주께서는 당신이 가야할 길 넘어야 할 산 건너야 강과 바다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나사렛의 삶이 자칫 가볍고 단지 이루어야할 어떤 큰 명분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였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누구도 그 분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분은 그 시간을 철저히 나사렛 사람으로 보내셨다. 하루하루 탁자를 만들고 쟁기를 만들어서 그것을 가져다 주고 받은 품삯으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무화과 열매를 사고, 그리고 동생이 입을 옷을 사는 기쁨을 기꺼이 누리셨을 것이다. 그렇게 장터에서 돌아오는 그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고 경쾌하여 세상의 처음시간 흑암을 가름하던 시간에 수면위로 운행하시던 성령의 발걸음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사렛 사람의 시간은 예수께 6일의 창조와 7일의 에덴의 휴지기의 기쁨과 거룩한 평강이 같이 공유되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나사렛 사람으로 세상의 모든 삶과 시간과 상황들을 가치있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분이 나사렛 사람이었음을 인하여 현재적 우리의 삶도 또한 그렇게 깊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거룩한 시간, 필요한 곳에서 땀 흘리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그런 가치를 지닌 나사렛 사람이고 싶다.

 

3.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나사렛의 삶에 대한 열망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아들아! 그 나사렛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푸른 지중해와 따뜻한 훈풍으로 스치는 그 언덕으로 네게 열려져 있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나사렛은 네가 그저 단순한 쉼을 가지고, 안일한 꿈을 꾸는 언덕이 아니라 바로 생명의 근원을 향한 출발을 위한 거룩한 장소가 되고 있음을 알기 바란다. 그렇게 너의 현재적 삶을 향하여 나의 깊은 뜻을 부여하고 싶구나....

 

4.

 

사랑하는 아버지.....

 

나사렛 언덕에서 땀을 식히며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에 아버지의 음성과 만지심을 듣고 느끼기를 원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간밤의 폭풍우가 밀려난 하늘가로 한줄기 구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저 구름처럼 무심한 강과 산야를 바라보며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흐름의 끝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참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리고 그 삶을 다시 살아가겠습니다. 그 흐름이 그리고 흐름의 끝에서 만난 그 가치가 지금 이 시간에 임하게 하소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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