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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마을의 어떤 분들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을 ‘이(理)’라고 부르고, 어떤 분들은 법(法), 또는 공(公)이라 부르며, ‘Cosmic Mind’나 ‘Cosmic Principle’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여러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원시 유일신 신앙’만은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하여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유일신 신앙’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유일신 신앙을 재해석하여 ‘배타적 유일신 신앙’을 넘어 ‘포용적 유일신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과거 기독교 전통에서 고백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인류의 아름다운 종교 유산과 신념체계를 모두 부정하는 ‘배타적 하나님’이었지만, ‘포용적 유일신 신앙’을 장려하는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온 세상 만물을 크게 품으시는 ‘한 울’님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런 ‘포용적 유일신 신앙’에는 배타성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우리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허락하신 것이기에, 지구마을 모든 종교와 문화도 (심지어 무신론까지도) 있는 그대로 포용해야 하며, 서로를 자매형제로 인정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포용적 유일신 신앙관에 의하면, 기독교와 이웃종교 모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담고 있는 그릇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그릇, 즉 특정 종교의 전통이나 제도를 절대화하여 갈등을 빚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전통에서는 오래 동안 하나님을 오직 인격적인 신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인격’이라는 개념은 신성의 신비와 독특성을 우리의 경험과 논리로 설명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분’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로서 ‘인격’이나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은 적절하고 아름다운 말일 수 있지만, 그 용어를 절대화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 안에 갇혀버리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셨다.”는 생각도 절대화해서는 아니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초인격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이라는 말을 순 우리말로 풀이하면 ‘사람다움’이 됩니다.


“말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을 말처럼 생긴 신으로 이해했을 것이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하나님을 인격, 즉 사람의 모습을 한 분으로 이해한 것은 옛 믿음의 선조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인격’이라는 개념 안에 가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Who is God?)’라고만 묻지 말고 ‘하나님은 무엇인가?(What is God?)’라고도 물읍시다.”

우리가 그렇게 물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더욱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그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만나는 지구마을 모든 이웃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우님들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교우님께서 다니시는 교회에서부터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는 작은 밀알이 되어주십시오.

만일
우리 한국 교회가 배타 교리의 벽을 넘어 포용적 신앙으로 가는 이 일에 앞장서게 된다면, 지구마을은 종교와 문화에 의한 갈등을 극복하고 지구가족으로 대화합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우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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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써 산들바람님의  ' 이제 “하나님은 무엇인가?”라고도 물어봅시다.
' 을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 은 글을 올린 날짜입니다.

1.  제가 만난 하나님 (11/3)
2. 
‘성서의 하나님’은 이삼천 년 전 고대인이 인식한 하나님  (11/7)
3. 
‘변치 않는 신앙’ 은 스스로를 가두는 것  (11/17)
4.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11/29)
5. 많은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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