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 신자들과 유배당한 신자들 / 김준우 교수

by 나누리 posted Jun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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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열증 신자들과 유배당한 신자들
                                                                                         
     ~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과 대책 ~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 전 감신대 교수

한국갤럽의 <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에 대한 조사가 여실히 보여주듯,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젊은층과 고학력자 가운데서 개신교를 이탈하여 비종교인이 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반면, 다른 종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비율은 가장 낮기 때문인데,
이것은 한국 개신교가 지식층과 젊은층의 호감을 얻
지 못할 만큼 일반적으로 반이성적이며 비주체적이며, 비민주적이며, 비윤리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흔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다운 믿음”이라고 윽박지르는 반이성적 태도는 결국 권위에 맹종하도록 만드는 비주체적이며 비민주적인 태도뿐 아니라, 성직자와 신자 모두에게 있어서 믿음과 생활을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어, 결국 비도덕적인 생활조차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와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교회의 쇠퇴 위기와 사회적 신뢰성 상실의 위기는 하나의 공통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위기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기독교의 몰락 위기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서,

그 공통적인 원인은
바로 신학적 위기, 즉 교회의 기초를 역사적 예수 자신의 삶과 가르침에 두기보다는, 예수에 대한 고백과 후대의 해석(“도그마의 예수”)에 두었을 뿐 아니라, 그 “도그마의 예수”에 대한 믿음만 강조했지, 그 배후에 있는 종교체험(역사적 예수와의 만남을 통한 하느님 체험)을 역사적으로 해명하지 않아,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이탈한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도그마의 예수”는 한 마디로 말해 하느님의 성육신이며 삼위일체의 제2격으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 승천하여 하느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으로서, 그를 믿는 신자들을 천당으로 인도하는 초자연적이며 신화적인 예수이다.

그러나 “도그마의 예수”이며 “텍스트 상의 예수”는 나자렛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예수 속에서 하느님의 성품과 속성을 보았던 종교체험”을 고백하고, 설명하고, 교리로 신학화한 것인데, 그 “도그마의 예수”의 핵심, 즉 그 신앙고백과 교리 배후에 놓여 있는 종교체험, 다시 말해서, 그렇게 고백하도록 만든 “역사적 예수와의 만남을 통한 하느님 체험”이 베일 속에 가려지고, 또한 그 고백 과정, 즉 나자렛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된 과정이 해명되지 않은 채, “도그마의 예수”에 대한 믿음만을 강조함으로써, “도그마의 예수”가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뿌리내리기보다는 그 역사적 뿌리가 잘려지고 이탈되었기 때문에 초래된 위기인 것으로 생각된다.

“도그마의 예수”에 대한 믿음을 교회의 기초로 삼고, 그 신화적 고백의 배후에 있는 종교체험을 해명하는 데 실패한 결과,

(1) 예수 자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섬기게 됨으로써,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멀리 벗어난 기독교의 모습이 되었으며,

(2) 신화적 언어로 고백된 “도그마의 예수”는 오늘날 신뢰하기 어려운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의 위기를 초래하였으며,

(3) “도그마의 예수”에 대한 믿음의 절대성에 대한 맹종으로 인해 비주체화의 위기, 특히 “서구적 하느님의 감시자로서의 시선에 의한 정신적 식민지화와 탈주체화,” 및 그와 관련된 “교회 안의 파시즘”에 의한 비주체화의 위기를 초래하였고,

(4) 저세상적이며 기복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 “레드 콤플렉스”와 같은 적개심과 패거리주의 등, 비윤리적 생활이 사회적 역기능으로 작용하여, 결국 역사적 예수는 실종되거나(예수는 없다), 모호한 존재(예수는 신화다)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의 쇠퇴 위기와 사회적 신뢰성의 위기가 초래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혁만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재발견을 통해 “도그마의 예수”를 다시 그 본래적인 근거 위에 세우는 작업이 시급하다.

특히 한국의 일반적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목회자와 교육받은 평신도들은 똑같이 “정신분열증”을 경험하는 실정이다.

즉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역사적 과학적 세계관은 “사실 근본주의”(fact fundamentalism), 다시 말해서,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거나 역사적으로 신뢰
할 수 있는 사실만 진리라고 가르쳐 신화를 거짓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가르치는 데 반하여, 교회의 종교적 세계관은 일반적으로 “문자 근본주의”(literal fundamentalism)의 입장에서, 성서와 교리 속에 신화적 언어들로 주관적으로 고백된 사건들(예컨대, 동정녀 탄생과 육체부활 등)이 문자적으로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똑같이 “신앙의 실증주의”를 주장하는 이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 충돌을 일으켜 정신분열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신분열증은 오늘날 기독교인의 신앙발달 과정에서 흔히 겪게 되는 현상이다.

기독교인의 신앙발달 과정에서, 비판 의식이 생기기 이전의 “신화적-문자적 단계”와 “비분석적-관습적 단계”를 넘어, 비판적 사고를 통한 “주체적-반성적 단계”의 혼돈과 냉소주의를 거쳐, 관습적 신앙의 순진함을 다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제2의 순진함”에 도달하는 “접속적 단계”로 신앙적 성숙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 정신분열증을 치유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로버트 펑크의 지적처럼, “사실들 자체가 예수에 관한 궁극적 진리나 우리들 자신, 혹은 우리의 세계에 관한 궁극적 진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궁극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사실들에 근거해야만 한다.”

이것은 스퐁 감독의 지적처럼, “머리가 거부하는 것은 가슴이 예배하지 못한다”는 진실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사실 근본주의자들”에게 신앙은 최소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야만 이해가능성과 신뢰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가 축자영감설에 근거하여 “문자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경향 때문에, 고대인들이 신화적이며 상징적인 언어로 고백한 것을 문자적인 직설로 이해하는 “이솝의 오류”를 범할 뿐 아니라, 이 신화적 언어로 고백된 “도그마의 예수”를 그 배후에 있는 “역사적 예수”와 연결시키지 못함으로써,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이 되어 왔다.

이로 인해 신앙적 성숙이 이성을 희생시킨 절름발이 모습으로 오해되기 쉬웠고, 교회 안과 밖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이해가능성과 신뢰성을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유배당한 신자들”이 양산되어, 결국 교회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원인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앞에 언급한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서 젊은층과 고학력자 가운데서 개신교를 이탈하는 비종교인이 되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근본 원인이 이처럼 “유배당한 신자들”을 양산하는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즉 이 정신분열증은

(1) 교육받은 기독교인들, 특히 비판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며 주체적 자아를 형성하려는 젊은층을 교회 밖으로 내어쫓는 중요 원인으로 작용하며,
 
(2)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유배당한 신자들”의 자기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앙고백에 있어서의 비정직성(사도신경을 고백할 때의 이성의 희생, 혹은 머리와 가슴의 불일치)을 초래하기 쉽고,

(3) 이런 비정직성은 믿음을 단지 입술로만 고백하거나 남들의 믿음을 그냥 외우는 것으로 만들어 믿음과 생활의 불일치를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며,

(4) 이런 불일치는 기복적 신앙과 자폐증적인 개교회 중심주의로 인한 이기주의와 같은 비윤리성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으며,
 
(5) 이런 비윤리성과 위선은 또 다시 사회적 신뢰성 상실을 초래하여,

(6) 결국 교회의 쇠퇴 위기를 초래하는 중요 원인으로 작용하여,
 
(7) 교회의 쇠퇴는 또다시 사회적 아노미 현상, 그 짐승화(animalization)에 일조해 탈종교화의 수렁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미래 세대들, 즉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을 즐기며 “죽이고 즐겨라!”(Kill and Enjoy!)는 “장난감의 복음”에 사로잡힌 미래 세대는 일체의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더욱 세속주의적이며 편의주의적이며, 감각적이며 합리적인 경향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교회의 문자근본주의가 초래하는 “정신분열증”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유배당한 신자들”은 더욱 많아져, 한국교회의 쇠퇴와 전세계 기독교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첫번째 고리인 기독교의 핵심, 즉 “도그마의 예수”의 이해가능성과 신뢰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비판 의식이 생긴 이후 주체적이며 성찰적인 신앙단계로 성숙하기 위해 거치게 되는 정신분열증을 치유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즉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체험을 신화적 언어로 고백한 “도그마의 예수,” 그 “신앙의 진술”을 오늘날 절대불변하는 객관적 “사실의 진리”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신화화의 고백 과정을 역사적이며 합리적 언어로 해명하여, “도그마의 예수”에 대한 “지적이며 도덕적인 신뢰성”을 회복하는 신학적 과제가 시급하다.
 
이 과제는 고대세계의 신화적 언어로 고백된 성서와 “도그마의 예수” 배후에 놓여 있는 종교체험의 실체를 해명하고, 그 체험이 어떤 사회역사적 및 문화종교적 상황 속에서 생겨난 체험인지, 또 그 체험이 어떻게 신화적 언어와 세계관을 통해 고백되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해명함으로써 그 신화적 고백, 특히 “도그마의 예수”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그 의미를 해명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 이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 의 새로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찾는 작업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회에서 “도그마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 사이의 접촉점과 현실적합성을 확보하며, “예수에 관한 종교”를 다시 그 원천인 “예수의 종교” 위에 세우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신뢰성도 회복할 수 있는 대책으로 판단된다.

또한 역사적 예수와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성품과 속성을 온몸으로 살아낸 예수에 대한 새로운 존경과 흠모하는 마음이 예수의 삶을 본받고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운동으로 이어져, 예수의 정신에 따라 한국교회가 개혁되도록 돕는 온건하며 적극적인 전략일 것이다.

또한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기독교 전통의 어떤 도그마도 무조건적 권위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 역사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으며, 기독교 역사 2천 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신뢰할만한 역사적 예수상을 밝혀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의 차별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한국교회의 위기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기독교의 위기에 대해서도 중요한 종교문화사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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