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는 교리적 배타와 독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 산들바람

by 나누리 posted May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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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예수는 교리적 배타와 독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산들바람

1. 진실의 토대 위에 새로운 신앙 구축하기


"역사적 예수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말이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 신학은 역사적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안했는지, 존재했다면 개인이었는지 다수였는지, 역사적 예수를 '인물'로 보아야 할지 '사건'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논박하는 지점에까지 와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역사적 예수의 실체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역사적 예수의 진실'을 알고 받아들여야 진실된 기독교 신앙이 가능해진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이, 기록된 그대로 사실이 아니라 신화나 전설, 또는 문학에 의한 서술이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이천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그 무섭고도 어두운 교리기독교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구축된 허구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 위에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진실된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밝혀내고 그 진실의 토대 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춘향전의 작가가 누군지 모른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또는 실존했던 인물을 모델화한 것인지, 작가에 의해서 창의적으로 설정된 모델이었는지, 아무 것도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몽룡과 성춘향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당시 사회의 계급에 도전하는 작가의 정신은 분명히 살아있다. 춘향전이라는 작품이 존재하는 한, 그 작가의 정신을 부정할 길은 없다.


그러나 만일 춘향전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작가의 기본 정신을 무시한 채 이몽룡과 성춘향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얽매어 그들의 신앙과 삶의 절대기준으로 삼는다면,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 기준에 의해 살도록 강요한다면 문제가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춘향전이 문학작품이며 그 뜻과 의미를 새겨야지 사실로 받아들여 문자와 부분에 매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되겠다.

이렇게 춘향전에 대한 바른 이해가 형성된다면, 그 다음에 춘향전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양반과 상놈으로 갈라진 계급을 비웃고 탐관오리에게 매타작을 놓으며, 당시에는 금기시된 성문화를 호쾌하게 개방하는 춘향전의 정신은 작가가 누구든 상관없이, 주인공의 존재 유무와도 상관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2. 예수운동의 기원과 절정

<춘향전>을 감히 <성서>와 비교하느냐고 화를 내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춘향전이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문학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전하는 가치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 것처럼, 성서에 나타난 예수정신과 예수운동의 가치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약성서 전체가 예수의 정신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예수에 대한 기록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 기록이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건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는 빼앗긴 자, 약한 자, 소외된 자 편에 서서 가진 자, 빼앗은 자, 억압하는 자에게 저항한다.

성서의 예수는 특히 종교권력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다. 그의 외침과 행동은 그대로 저항운동, 민중운동, 혁명운동이었고, 이런 기독교의 독특한 저항운동은 구약의 예언자 정신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서기전 8세기의 예언자 아모스에서부터 뚜렷이 나타나는 이 예언자운동의 절정이 바로 예수정신과 예수운동으로 꽃피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아름답고 역동적인 운동은 성서 안에 예수 설화와 문학 서술로, 또한 그 가운데 녹아있는 저자와 편집자의 신앙고백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비록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었지만 예수를 '신앙의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의 서술이기에 그가 하셨다는 말씀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신화, 그가 베풀었다는 기적 등 모든 자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사실과 문학적 서술을 구분한다.


그 예수는 비록 권력자와 종교지도자들의 야합에 의해 스러졌을지라도(십자가), 그 정신과 운동은 스러질 수 없는 것이기에(부활), 전승과 기록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역시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여전히 소중한 고백이요 따르고 살아내야 할 모범이다.

또한 그 분이 꿈꾸었던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꿈이요 이상임과 동시에 기필코 이루어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신앙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성서의 인물들(등장인물 뿐 아니라 저자, 편집자 등을 포함한)이 경험했던 감동과 부활의 정신을 계승한다.

이렇게 21세기의 그리스도교 신앙은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여 우리의 신앙을 역동적으로 이끌어주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정신과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3. '역사적 예수'에 기반을 둔 신앙은 배타와 독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역사적 예수를 파헤치고 해부하는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성서 전체를 흐르는 예수정신과 예수운동의 맥이다. 나는 교리기독교는 점차 소멸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지만, 예수정신과 그 운동은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사라질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현대신학이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미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개인의 실존 여부를 넘어서 그의 이름으로 성서의 기록에 녹아 흐르는 정신과 운동이다.

그 정신과 운동은 너무도 보편적이고 인류애적인 것이기에 독선과 배타가 끼어들 틈이 없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는 교리기독교의 독선과 배타를 돌파하고 극복하여 너그럽고 풍요로운 신앙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신앙은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동반자 역할을 해온 과학과 합리주의, 휴머니즘, 아름다운 이웃종교들과도 충분히 벗이 되며 상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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