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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곁의 예수, 그대 안의 예수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오늘 예수는 어디에 있는가?

예수가 진정 우리의 구원자라면, 우리의 벗이라면,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예수에게 우리의 구원을 내맡길 수는 없으니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예수를 우리의 다정한 벗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자들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어떻게 답하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과 삶의 내용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수를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신 초월적 그리스도로 생각하는 신자는 아무래도 이 땅, 이 세상보다는 내세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수를 이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신자는 하늘보다는 땅, 내세보다는 현세, 뭔가 신비하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역사적이며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복음서에서는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먼저 예수 탄생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가 베들레헴 마구간 '말구유'(2:7, 12)에서 태어났다고, 그리고 이 성탄의 기쁜 소식을 주님의 천사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자는 '밤을 새워 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던 목자들'(2:8)이라고 보도한다.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 다시 말해 이방인으로서 하늘의 징조들을 연구하던 점성술가들의 입을 빌려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말구유'에 대한 언급이 없는 대신 그 소식을 듣고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렸다'(2:3)고 보도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마태복음은 예수 탄생이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애써 전하려는 것 같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 탄생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되었고 '민중적' 색채가 가장 뚜렷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1:1)의 서두를 연다.


즉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기독론을 전제하고 들어가면서도 예수 개인의 출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예수가 세례(소명)을 받고 펼쳐 나가는 일체의 활동을 복음으로 파악한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1:1)고 가장 신학적인 색채를 풍기면서 예수의 소위 선재설을 강조한다.


대충 이 정도만 놓고 보아도, 4복음서 모두 예수 탄생의 의미를 자기 나름의 신학적 관점에서 달리 보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예수 탄생의 의미에 대한 획일적인 정답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신앙 '고백'의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다분히 역사적·문학적 '상상력'과 결부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예수 이해, 자신이 옳다고 받아들이는 신학이나 교리를 남에게 함부로 강요하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은 일이다.


마구간처럼 초라하고 지저분한 판자촌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마태복음에 마음이 더 이끌릴 것이다.


철야 작업을 밥 먹듯이 하는 노동자라면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에 보다 친근감과 정겨움을 느낄 것이다.


'운동'으로서의 예수 이야기, 신앙의 역사적 실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마가복음에서 보다 역동적인 예수 이해를 발견할 것이다.


'정통' 교리나 신학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요한복음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각자의 삶의 처지나 관심사에 따라 이렇듯 다양한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앙고백과 신학의 '다양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복음서의 기본 정신에도 위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모든 고백이나 신앙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되어야 하는가?

모든 고백, 모든 신앙, 모든 신학, 모든 교리는 '똑같이' 소중하고 똑같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신자들이 서로에 대해 인간적인 존경과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가치판단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하고 생명을 섬기는 데 이바지하는 것과 인간을 억압하고 생명을 짓누르는 것, 이 둘을 신중하고도 정확히 구별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나누려는 이분법적 태도는 위험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느 쪽이 보다 인간화와 생명의 개화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 것은 모든 신자의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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