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 있는 소리 / 지성수

by 나누리 posted Aug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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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수 / 시드니 사랑방 목사


최근에 은퇴를 몇 년 앞둔 친구 몇이 만난 자리에서 한 동료가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설교를 하면 사람의 말이 되는 수가 있다”

고 해서 내가

“은퇴할 때가 되니까 철이 드는 모양이네”

라고 하고서 모두 웃었다.

 

목회자들의 주력 업무인 설교 !  이것 정말 함부로 할 것 아니다.

30 여년 전에 시골에서 목회할 때 거의 70살이 된 박권사님이란 분이 혼자 교회를 나오면서 충성하고 계셨다.

남편은 걸쭉한 농담을 잘하는 분이어서 비록 교회는 안 나와도 평소에 나와는 친근하게 지냈기 때문에 한 번은 정초에 인사를 가서 내가 슬슬 농을 걸었다.

“영감님! 이제 그만 돌아가실 준비를 하셔야지요.”


“묏자리도 보아놓고 다 해놓았어“

“그런 것은 걱정 안하시고 돌아가셔도 되요.

남은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 거니까요. 본인이 준비할 게 따로 있지요”

“나보고 교회 나오라고? 전도사 양반! 내가 하나 물어 봅시다. 교회는 왜 졸업이 없소? 우리 마누라 어렸을 때부터 다니는데 아직도 다니잖소? 대학도 4년만 다니면 졸업인데. 졸업이라는 것이 있어야 다닐 맛이 나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대학에서 아무리 중요한 과목도 4학점인데 일생을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으니 도대체 몇 학점짜리냐?

교회에서 목사는 일생 설교를 해야 하고 신자는 일생 설교를 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수업이 아닐 수 없다.


십 수 년 전에 친구가 어렵게 빚을 내서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불루 마운틴이라는 시드니의 유명한 관광지에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을 개업했다.

개업예배에서 친구가 다니는 교회의 점잖은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내용은

‘교회가 멀더라도 주일을 잘 지켜야 한다, 십일조를 잘해야 한다.’

였다.

복장이 터져서 생각 같아서는 주방에 가서 큰 주걱을 가져다가 놀부 마누라 흥부 뺨 때리듯 설교하는 목사의 주둥이를 한 대 갈겨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 친구네 가족은 온 가족의 생계를 걸고 빚을 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심방 메뉴얼에 따라 입바른 말로 부담만 잔뜩 주는 거 같아서였다.

내가 설교를 했다면 지금 친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어떻게 힘을 모아 이 사업이 잘 되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

는 내용의 설교를 했을 것이다.

식사 끝나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농담으로

“오늘 자네 교회 목사님 설교 듣고 내가 시험에 들었네!”

하니까 사람 좋은 친구는 웃으면서

“어? 목사가 마귀 소리 하네? 빨리 가서 귀 씻어야 겠네”

라고 대꾸했다.

 

불행히도 그 후 식당은 IMF가 터져서 친구는 그만 빚더미에 올라앉고 결국 교회도 옮기고 말았다.


50년 전에 전도사로서 중학교 시절에 나를 가르쳤던 분이 미국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미국에 갔던 길에 큰마음 먹고 댈러스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켄터키의 시골까지 찾아 갔다.

마침 교회에 도착한 시간이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이라서 설교를 들게 되었다.

그런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했다.

목사님은 내가 중학생 때 들었던 설교를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런 낌새를 알았는지 목사님은 설교 말미에

“나보고 항상 똑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만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 강조해야 한다.”

는 소리까지 하셨다.

 

정나미가 떨어져서 잠만 자고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나는 목사님들의 설교에 대해서 피도 눈물도 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대해선 말도 안 되는 소리, 검증되지 않은 내용, 다음 세상에 대해서는 갔다가 와 본 사람 없다고 맘대로 해석하고 맘대로 갖다 부치기 등등 문제가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에서 목회를 할 때 하루는 배를 타고 소양호를 건너 춘천으로 나가야 할 일이 있었다.

마침 선착장에서 교인이 경영하는 중국집 배달의 기수인 철가방 소년을 만나서 옆 자리에 앉게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한 참을 가다가 철가방이 쭈뼛쭈뼛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목사님! 뭐 하나 물어 봐도 되요?”

“그럼 되고 말구”


“교회 안 다니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지옥 가나요?”

밑도 끝도 없는데다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이럴 땐 말을 돌리는 것이 수다. 그래서

“누가 그래?” 했더니


“목사님이 그러시던데요?”

“내가? 언제?”

자초치종을 듣고 보니 내용인즉 이랬다.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 기간에 철가방이 교회 옆에 있는 군청에 배달을 왔다가 낮 시간에 부흥강사의 설교를 창문 밖으로 들었던 것이다.

내부단결용으로 우리 끼리 예수 잘 믿자고 한 이야기가 그만 보안이 새서 외부인이 담 밖에서 들었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귀한 것을 배웠다.

설교는 지나가던 잡상인이 들어도 무리 없이 이해가 되어야 한다고.

저희들만 아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교회를 오랜 다닌 사람, 기독교 문화, 기독교 상식을 갖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닌 일상 상식적 용어여야 할 것이라고.

예수의 설교는 예수를 시험하러 온 사람 아니고는 아무도 시험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자 거리의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호주 교회에서는 설교 중에 제멋대로 헛소리(허위, 과장, 비난, 사생할 침해 등)를 할 수 없다.

 

망우리의 어떤 목사처럼 ‘예수 안 믿고 우상숭배해서 쓰나미가 왔다.’는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다른 종교를 비방했다가는 당장 신앙모독죄(Religious Vilification Law)로 고소를 당하는 수가 있다.

몇 해 전에 신학대학원의 채플에서 설교를 할 일이 있었다.

설교를 부탁하면서 나를 잘 아는 교수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학생들이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라고 했다.

 

래서 ‘쓸데 있는 소리’만 하려고 애를 썼다.

패러다임 안에서 패러다임 밖의 소리를 하면 쓸데없는 소리가 되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수가 했던 이야기들도 당시의 제사장들의 패러다임에서 보면 모두 쓸데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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