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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숙
2011.11.22 20:30

코타령 코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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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풀어대던 사람이라 “코순이”가 나의 별명이었다. 이제 뉴질랜드에서 살아온 나의 인생 후반부의 세월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뉴질랜드로 시집올 때까지 살았던 세월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그러니 누군가 코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웬만한 돌팔이 코 박사쯤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의 반 타의 반 돌팔이지 의사는 아니기에 여기에서 전문적인 의학을 논하기 보다는 순전히 코순이의 경험담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때 그 누군가가 확실히 이해만 시켜주어도 그 문제의 절반은 해결하고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특히 같은 관습이나 언어를 가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이해하고 조언해 준다면 그 효과도는 훨씬 올라간다.

 

종종 한국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  뉴질랜드에 와서 내내 감기 증상이 있어요. 한국 약을 아무리 먹어도 감기가 안 떨어지네요. 감기 때문에 아주 짜증이 나요. 이렇게 공기 좋은 나라에 왔는데 왜 그럴까요?” 이런 분들이 있다면 다 코순이에게로 오라.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서 자나 깨나 이 말썽꾸러기 코를 진단해 본다. 내 코가 작아서 그런가? 아니면 낮아서 그런가? 치수를 재어 보다가 남편까지 끌어들여 같이 재어 보자고 했다. 처음엔 이상한 듯이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나중엔 줄자까지 들고 와서 동참하였다. 코순이의 코 길이 6 cm 남편은 7.5 cm, 콧방울의 넓이 코 순이 3.2cm 남편은 3.9 cm, 콧구멍 지름 코 순이는 1cm 남편은 2.5 cm, 서양 사람은 코가 크니까 당연히 클 수밖에…점잖은 남편도 콧구멍의 지름을 잴 때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사람과 시체와의 차이는 이 콧구멍에 생과 사가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미모의 양귀비의 코나 조각 같은 클레오파트라의 코나 3층에서 떨어진 메주 같은 코나 누군가 코로 말미암아 받는 고통이 있다면 그 크기와 모양새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코 타령의 서론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한마디로 코순이의 병명은 만성 알레르기성  비염 또는 화 분열(Chronic Allergic Rhinitis, or Hey fever ) 이라고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그 대표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코의 충혈 (Nasal Congestion)               -코막힘 (Blocked or Stuffy Nose)

-숨 쉬기가 힘듬 ( Difficult Breathing)         -씩씩거림 (Wheezing)

-말간 콧물 (Clear Runny Nose)               -눈 충혈, 가려움 (Red eye, Itchy)

-목의 건조, 캑캑캑 (Dry Throat)                -재채기 (Empyema, Sinusitis)

 

1980년 코순이가 이민 초기, 주치 의사가 알레르기성 증상이라고 여러 번이나 말해줬겠지만 전혀 믿어지지 않았고, 그 영어 설명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하기만 하였다.  어떤 독자가 코순이와 비슷한 증상을 느껴서 의사를 방문한다면 최소한 위에 적은 단어만 영어로 적어 보여 주어도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다. 코순이가 막 뉴질랜드로 시집와서 수도인 웰링턴에 살 때였다. 한 달쯤 되었는데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양쪽 코가 꽉 막히면서 숨을 쉴 수가 없고 목이 캑캑거리며 계속되는 고통 때문에 나의 새신랑도 덩달아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밤마다 계속되는 코타령 때문에 결국에는 방을 따로 쓰자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 때 나이 든 한국인 어르신이 코 순이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곤 했다.
“자고로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면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니까 미리 이혼을 막으려면 절대로 각 방을 쓰면 안 된다.

이렇게까지 엄포를 놓았다
.
아무튼, 이혼은 고사하고 짜증스러운 코 때문에 번번이 의사에게 달려갔다. 담당 의사는 아예 내게 선언을 해버린다.

 

나의 견해로는 당신의 코를 고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당신은 코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타인에게 전염성도 없다.  정 힘들면 웰링턴 이 도시를 떠나라. 그리고 가능하면 퍼스라는 도시로 가라. 그 곳은 습하지 않고 온도가 높은 곳이라 당신의 코가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코 때문에 쉽게 나라까지 바꿀 수야 없지 않겠나. 그 뒤로 뉴질랜드 약국에서 시판되는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다.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약들노란 약, 빨간 약, 똥그랑 땡

갖가지 종류의 스프레이- 뜨거운 스팀 타올을 뒤집어 쓰고 하는 스팀 요법 등등.

그래도 여전히 코 증상에는 차도가 없었다.  이비인후과 전문 의사는 내게 코 수술을 권한다. 코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 있으랴! 결국은 수술을 받았는데 (Cauterized Operation) 아무런 차도도 없고 며칠 동안 코피만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주 우연히 웰링턴 발행 신문을 보았는데 내 코 수술을 해 준 전문 의사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 의사는 무슨 암 말기의 자신의 중병과 싸우면서도 워낙 코순이가 힘들어하니까 수술을 해줬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한국에 살 때는 이런 증상이 없었는데 왜 그럴까. 혹시 코 암에 걸린 것이 아닐까?

키위 교민들은 안부 인사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경숙 Cut off your nose  그 말썽꾸러기 코를 왜 달고 다니느냐. 아예 떼어 버려라.”

 

불난 집에 뭐 부채질 할 일 있나? 그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뉴질랜드에 왔으니 영국인 남편의 관습을 몰라 매일 내가 사고만 친다고 하니 이래저래 스트레스만 늘어 갔다.  그럴 때면 회사에 출근한 남편의 속옷에다 팽팽코를 풀어 버린다.  그가 안 볼 때 살짝 세탁기에 넣을망정

때론 그의 헌 속옷을 사정없이 싹둑싹둑 가위로 잘라서 아예 코풀이 수건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손수건보다 더 부드러워서 좋고 또 남편에게 코순이는 간접적으로 화풀이를 하는 셈 이었다.

 

아무튼, 코 문제 때문에 따뜻한 환경으로 바꿔 보려고 오클랜드로 이사하였다.  새로운 담당의사는 한방 요법을 권하길래 코에다가 침을 맞기 시작했다.  꽉 막힌 코가 확 뚫리니 기적 같은 침술의 신비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3번쯤 더 맞게 되었을 때 그 효과는 점점 줄어 들어갔다.   그러니까 의사는 정직하게도, 다시는 침을 맞을 필요가 없다고 하여 중단하였다.  그리고 코의 원흉이 어디서 오는지 찾기 위한 코 알러지 테스트를 받으라고 했다.

 

알려진 통계 자료에 따르면 모든 알레르기 환자들의 75% Rag weed pollen (화분열의 원흉이 되는 꽃가루의 이름) 에서 온다고 한다. 그리고 50% Grasses (잔디)에서 오고 10%Trees (나무)에서 오고 또는 Mold Spors (곰팡이), Animal Protein (동물 털), Mites (진드기), Dust (먼지) 와 차가운 온도 그리고 자신의 면역 상태가 약해져 있을 때라고 한다.

 

뉴질랜드는 인구 밀도와 전원 환경의 비례로 볼 때, 공기 중에 떠도는 꽃가루의 분포도가 (Pollen Count)  상당히 넓다. 그래서 알러지성 비염 환자들의 수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비슷한 원인으로 천식 환자나 알러지성 피부병 환자도 많다.  가벼운 증상까지 포함을 해본다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집집마다 식구 한 사람 정도는 이러한 증상을 경험한다.

 

영국의 통계는 90명 중에 한 사람은 아주 심한 케이스인데 아마 나도 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알러지 테스트는 피부와 혈액 검사 2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는 팔의 피부에 했다 (Skin Test).  드디어 그 결과가 나왔는데 나의 원인은 잔디” ( Substances, Allergen) 로 판명이 되었다.  그 때까지는 카펫트의 털에서 오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뜻 밖에도 잔디라니그렇다면 우리 집에 있는 아름다운 푸른 잔디를 밀어버리고 시멘트로 다 깔아 버린다면 코 증상이 나아질까요? 라고 물어 봤더니 의사는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했다.

 

대부분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기 전에 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꿈을 꾼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 년 살고 싶네.”

오메…”저 푸른 초원이 바로 나의 웬수라니 남편이 정원의 잔디를 깎는 날은 모든 방문을 걸어 닫고 내 방으로 숨어 버린다. 그러기를 코의 고통과 몇 년 째 싸우다가 겨우 나중에 깨달고 보니 코순이의 알러지 비염의 원인은 이러했다.

- 체질적으로 비염에 걸릴 소질이 있고            - 초기 이민 생활의 심한 스트레스

- 뉴질랜드의 꽃가루와 잔디의 분포가 많고        - 전체적으로 낮은 온도의 날씨

- 공기 중에 떠돌던 꽃가루가 코 속을 자극하여 점막이 충혈되고 공기의 흐름을 방해해서 코가 막히게 된다.

이렇게 원인만 정확하게 알아 내어도 이미 병을 이겨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간다.

 

언젠가 코순이는 키위들의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점잖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였다.   드디어 덩치가 큰 키위 남자가 연설을 하기 위해 올라갔는데 갑자기 하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단상을 바라 보았는데 그 Mr.덩치가 자기 손수건으로 팽하고 코를 푸는 소리였고 그의 옷깃에 작은 마이크가 달려 있던 걸 깜박 잊었나 보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다른 키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점잖게 무게 잡고 있는 모습이 또 우스웠다.  점잖은 자리에서 키위들이 팽팽코를 푸는 것을 자주 보는데 아마 이러한 일에는 익숙해져 있나 보다. 그런데 키위들은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을 때 손을 가리지 않는 에취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실례가 된다.  그 이유는 세균이 멀리까지 뛴다고 생각해서 아주 싫어한다.  그 때는 꼭 “Excuse me” 라고 미안함을 표시해야 한다.

 

대개 코 알러지의 증상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갈 때 찬 바람을 쏘이면서 시작을 한다.   그로부터 오전까지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다가 낮의 기온이 올라가 한낮이 되면 조금 괜찮아진다.   그리고 다시 저녁 때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 가면 다시 증상이 나타 난다.  때로는 중요한 업무 상의 미팅을 할 때나 엄숙한 자리에서 이 증상이 나타날 때 아주 난감해진다.

 

얼마 전에는 또 한 번 코가 수난을 겪었다.  동네 약국을 갔는데 투명한 유리문이 있는 것을 못 보고 그대로 얼굴을 꽝 부딪치는 순간 줄줄줄 코피가 터졌다.  걷잡을 수 없이 코피가 쏟아지는 코를 붙잡고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의사의 진단 결과 코 안쪽의 연골이 부러졌다고 한다.  본인은 너무 아파서 한 동안 꼼짝을 못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공짜로 코 성형수술 했다고 놀려댄다. 아무튼 코가 이렇게 수난을 당하면서 다시 알러지가 올까 봐 염려를 했지만 다행히 외상과는 관계가 없었나 보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뉴질랜드 한인 사회가 발전하면서 교회 부흥회와 공연들이 많아졌다.   언젠가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왔다.  그 분의 공연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연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공연 시간은 점점 임박해 오고 있었는데 정작 그 가수는 최악의 컨디션을 맞이하고 있었다.  얼굴과 온 몸이 빨갛게 붓고 목이 켁켁거리고 안절부절 난리가 났다. 공연을 앞둔 가수의 생명은 목소리인데공연자나 우리 모두는 정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나?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코순이는 이 때다 하고 그 동안 갈고 닦은 돌팔이 코 박사의 실전 경험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 - 짜 자 잔

언제나 비상 시를 대비해 내 핸드백에 가지고 다니는 알러지 알약을 그에게 복용하게 하고 또 다른 응급 조치를 하였다.  다행히도 그 가수는 이러한 나를 의심하지 않고 고분고분 시키는 데로 따라 주었다. 그리고 무대 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서서히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공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컨디션을 추스려서 무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폭포수가 쏟아지듯이 넘쳐 흐르는 우렁찬 노래 소리-. 키위들과 함께 감동에 찬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 성악 공연을 본 중에서 최고였다.   그리고 그 날 코순이는 그 가수의 주치의라도 된 것처럼 마냥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며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도 노래와 함께 모두 날려 버렸다.

 

, 그러면 다시 코순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민 후 오랜 시간 동안 코 타령만 하던 그 말썽꾸러기 코가 어떻게 나았는지 궁금하지요?

대부분의 알러지성 병은 100% 완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코순이의 경우는 정확한 원인 규명과 분석을 하게 되었고 병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져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깨닿기까지는 이민 생활의 초반부 13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이민 생활에 대한 연륜이 쌓여 가면서 뉴질랜드의 생활과 관습을 이해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 들게 되었고 몸의 면역 기능도 많이 강해졌나 보다.

 

그리고 알러지 증상의 강도에 따라 어떤 약이 내게 가장 적합한지 알아내었고, 전조 증상이 왔을 때 빨리 알아 차려 미리 조치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평화로워져서 설령 알러지 증상이 와도 이제는 짜증이 나지 않고 바로 이겨낼 수 있다.   그 뒤로 더 많은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뉴질랜드로 이민 온 이후 그렇게도 힘들었던 코 타령이 사라진 셈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 주변의 사람들이 코 맹맹이 소리로 감기 증상(?)을 호소하며 불평을 해댈 때 짠!- 그들에게 작은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혹시라도 독자들께서 이러한 문제로 고심을 한 적이 있다면 나의 경험이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코 타령을 해대던 코순이의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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