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테아로아의 꿈 (8)
아, 스코틀랜드!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 아일랜드의
연합 왕국이다. 독특한 문화를 지탱해오며 긍지와
자부심이 강한 스코틀랜드인들이 독립을 추진하며 ……
아는 만큼 즐겁고 행복하다. 모르는 만큼 답답하고 불편하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이 나라의 가장 인기 종목인 럭비나 요트 경기에 대해서 그 경기 방식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에 대해 그 속내를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민족 국가이니 만큼 각 민족들의 배경을 알고 지낸다면 좀 더 심층적인 인간관계를 누리면서 재미를 맛 볼 수도 있을 터인데…….
잉글리쉬(English)는 잉글랜드(England) 사람, 잉글랜드 말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 영국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잉글랜드가 영국이라는 모순된 인식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 영국을 부르는 명칭은 거의 모두 ‘England’를 포르투갈어나 네덜란드어로 부르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렇게 부르면 사실은 스코틀랜드나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포함되지 않는 명칭이다.
이민 초기에 키위들과 대화하면서 첫 번째 당하는 질문은 ‘어디 출신이냐?(Where are you from?)’ 이었다. 우리는 유색인종이니까 당연히 이민자로 생각하고 출신국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키위들도 알고 보면 모두 이민자 출신이고 다만 우리보다 좀 더 일찍 이 나라에 왔을 뿐인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를 소개함은 물론 ‘너는 어디 출신이냐?’ 고 되물어보기도 했다. 결국은 영국 사람인데 ‘from UK’ 또는 ‘from GB’, ‘from Scotland’, ‘from England’ 라고 대답하니 혼란스럽다.
우리가 말하는 영국의 정식 명칭은「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즉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 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영국을 이루는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왕국이 있고 아일랜드 섬의 북부 일부가 영국에 속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아일랜드 왕국이 자유국으로 분리되었으나 북 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아 현재의 연합 왕국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from UK’ 라고 하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 아일랜드 중의 어느 한 곳에서 왔다는 뜻이고 ‘from GB(Great Britain)’ 라고 하면 북 아일랜드를 제외한 어느 한 곳에서 왔다는 뜻이다. 그들이 우리더러 ‘South Korea or North Korea’냐 라고 묻는 마당에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UK 또는 GB의 어디냐고 다시 물을 수 있다. 북아일랜드라고 하면 신교냐 가톨릭이냐 라고 물어보고 신교라고 하면 아마도 너의 조상은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와 북 아일랜드에 정착했을 거라고 말해주면 그쪽에서 기가 질리고 만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서 지금의 잉글랜드 지역인 중남부 지방은 평야가 많고 기후가 비교적 온난하여 살기 좋은 곳이어서 영국인들의 선조는 고대 때부터 유럽 대륙에서 건너와 이 지역에 정착해왔다. 원래 켈트인들이 건너와 살고 있었는데 로마가 정복해오자 켈트인들은 북부지방인 지금의 스코틀랜드로 일부는 서쪽 귀퉁이인 지금의 웨일즈로 밀려나가 살게 되었다. 로마가 망하고 철수하자 켈트인들은 옛 고향을 찾고자 내려 왔지만 이 때는 앵글로색슨 족이 침범해와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앵글로인이 강해 주도권을 행사하다보니 ‘앵글로인의 땅 (Angle-land)’ 이란 말이 ‘잉글랜드(England)’ 의 어원이 되었고 그들의 언어가 영어가 되었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의 북부를 차지하여 항상 잉글랜드와 대립해 온 스코틀랜드인들의 긍지와 자긍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인 겔릭(Gaelic)어와 독특한 문화를 지탱해 오고 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혹독한 기후에서 지내는 만큼 고집이 매우 세고 억척스럽기도 하지만 술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정이 두텁고 대범하면서도 소박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독신녀로 살다가 1603년에 죽자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 왕이 제임스 1세로 잉글랜드 왕을 겸임하게 되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同君聯合) 관계를 성립하게 되었다. 100여년이 흐른 뒤 1707년에는 양국의 의회가 통합되고 연합왕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500만 정도의 인구가 험하고 척박하기만 한 북부 산간 지대에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이다. 남부 곡창 지대에서 4,500만 정도의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잉글랜드에 비해서 문화적, 경제적으로 뒤떨어지니 스코틀랜드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의회의 독립을 위해 1978년에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인구의 3분의 1만 참가한 투표에서 4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해 독립은 좌절됐다. 그러다가 2014년 9월 다시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45%의 지지를 얻는데 그쳐 다시 독립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독립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을 거라는 주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합의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연합을 이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단일민족 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한반도가 외세의 흥정에 의해서 두 동강이 난 후 70여년이 흐른 채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처지가 비교된다.
다중문화적 다원주의(Multi-Cultural Plurality)를 표방하고 있는 작은 세계(Small World)인 뉴질랜드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인식하기위해서라도 뉴질랜드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 그룹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