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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만나는 사진 속의 인물 (1)

by 한일수 posted May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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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만나는 사진 속의 인물 (1)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물품은 화폐일 것이다. 화폐에는 누군가의 인물 사진이 들어 있다. 매일 같이 보고 살면서도 그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낸다면 화폐에 대해서 무관심한 탓일까? 화폐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폐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화폐 속의 인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이 지내는 것이라고 보여 진다.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5달러짜리 지폐 속의 거칠고 강인하게 보이는 한 남성의 초상화를 보고 의아해 한 경험이 있다. 그 인물을 알게 된 것은 이민 밥을 제법 먹고 난 후의 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처음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19192008) 경의 사진이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친근하게 유통되고 있는 20달러 지폐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Queen Elizabeth the 2nd.)의 사진이 실려 있다. 뉴질랜드는 1917년부터 영국 의회의 결정에 따라 정식으로 자치령이 되었다. 그러나 건국이념인 와이탕이(Waitangi) 조약의 정신에 따라 입헌군주국으로서, 상징적이나마 영국 여왕을 받들고 있으며 총독(Governor General)이 여왕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힐러리 경과 여왕 사이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재임 62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양 세기에 걸쳐 영국 및 영 연방 국가들의 수장(首長)으로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 여왕은 공주로서 뉴질랜드를 방문 중이던 19522월 부왕 조지6세의 급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여 여왕 업무를 개시하였다. 195362일에는 성대한 대관식이 거행될 예정으로 있었다.

 


19세기까지 지구상에 해질 날이 없다던 대영제국도 20세기에 들어 세력이 기울기 시작했다. 북극점 탐험에서는 미국의 피어리에게 이미 기선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남극 탐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노르웨이의 아문센에게 추월을 당하고 말았다. 그 때가 19123월이었다. 바로 이어서 4월에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으로 건조된 타이타닉 호가 좌초하여 가장 큰 해난 사고를 기록했다. 그 후 세계의 중심세력은 미국과 소련의 두 축으로 형성되었고 영국은 군소 입헌군주국에 불과했다.

 


1953년 영국정부는 몸이 달아있었다. 에베레스트 정복만큼은 남의 나라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대규모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구성하면서 반드시 영국인이 최초의 정복자가 되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1차 원정대가 실패하고 스위스 원정대가 거의 성공할 뻔 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더욱 초조해졌다. 영국은 영연방 국가의 일원인 뉴질랜드의 벌치기 소년이었던 힐러리를 초청해 2차 원정대에 합류시켰다.

 


원정대는 362명의 짐꾼, 20명의 셰르파(Sherpa)1만개의 짐을 운반하며 등정 길에 올랐다. 최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마지막 등정 길에 오른 두 사람은 1953529일 아침 14kg의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그러나 마지막 12m 암벽에 부딪히자 거기에 힐러리 계단을 설치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19535291130, 수많은 탐험대원들이 목숨을 바쳐 도전했지만 이루지 못한 8,848m 지구상의 최정상 탐험을 뉴질랜드의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가 해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상을 정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에베레스트(티베트 어로 세계의 어머니 여신’)의 품에 최초로 안긴 두 사람이었다. 대관식을 4일 앞두고 이루어낸 역사적 과업이었으니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영국 국민들의 환호가 얼마나 하늘을 찌를 듯 했겠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라져 가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에 불을 지핀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여왕은 힐러리에게 Sir() 작위를 수여했다. 영국에 개선(凱旋)한 후 7월에 있은 여왕 주최 환영파티에서 세계의 정상 힐러리도 여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췄다. 젊고 어여쁜 여왕은 가볍게 힐러리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일어나세요, 힐러리 경.” 두 사람의 심정을 읽는 듯하다.

 


금년으로 88세를 맞는 여왕은 아직도 건재하지만 힐러리 경은 20081월 오클랜드에서 89세를 일기로 영웅적인 생을 마감했다.

 


한 일 수 (경영학 박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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