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

꿈 이야기

by 박인수 posted Jun 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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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이야기


‘장주(莊周)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그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꽃밭을 훨훨 날아다녔다. 그러가다 [꿈]에서 깨어나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도대체 꿈속의 나비가 본 모습인가, 꿈에서 깨어난 장주가 본모습인가.......’(장자, 제물론=齊物論, 호접몽이야기)


‘........ 그(야곱)는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는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기 28; 11. 12)


‘........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마태 2;19)


꿈은 옛날이나 요즈음 사람을 불문하고 모두 꾸게 마련이지만, 왜 성경을 위시한 옛날의 경전(고전)에 유달리 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을까? 꿈은 사람에 따라 현실에서 적중하는 경우가 많아 전부 허황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어린이가 꿈속에서 하늘을 날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키가 크고, 군것질할 돈이 궁하던 어린 시절에는 길가다가 동전이 소복이 모여 있는 꿈을 자주 꾸고, 물고기를 낚는 꿈을 꾸면 그 다음날 돈이 생기고, 조상이 꿈에 나타나면 반드시 조심해야할 일이 생기고, 불이 나서 집이 홀랑 다 타버리면 그 다음날 복권을 사는 게 좋고, 그 밖에도 용꿈, 돼지꿈, 개꿈....... 등등, 사람마다 꿈에 따라 얻는 경험이 다를 것이다. 엄마가 아기를 수태할 때면 거의 예외 없이 태몽을 꾸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꿈은 전연 허황된 것일까?


‘낮에 마음깊이 생각한 것은 잠자리에서 꿈으로 나타난다.(日有所思, 夜有所夢)’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한 두 번은 그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꿈을 꾸는 것일까. 꿈 연구가에 의하면 하루 수면시간의 1/4은 꿈을 꾼다는 내용의 글을 본적이 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을 8시간으로 잡으면 2시간을 꿈을 꾸게 되고, 그렇다면 대충 셈하여 인생에서 약 15년은 꿈이 차지하는 시간이다. 비교적 선명한 꿈을 제외하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우리가 꾼 꿈을 모두 기억하지 못할 따름이다.


꿈에는 꾸고 싶은 꿈도 있고, 꾸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평소 꾸고 싶은 꿈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춘추시대의 공자(孔子)는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주공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공자가 꿈꾸고 싶어 했을까? 주나라의 예악과 문물제도를 창제한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공자보다 약5백 년 전에 6관을 제정하였다. 6관이란 간단히 말해, 천·지·춘·하·추·동에 관직을 붙인 것(天官·地官·春官·夏官·秋官·冬官)으로, 이것이 중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에서 정부조직의 근간인 6부(이·호·예·병·형·공)로 자리 잡게 된 것을 안다면, 주공의 업적은 이것만으로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춘추시대의 혼란한 천하를 바로잡고, 사람들에 의해 내팽겨 쳐진 예악질서의 부흥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은 공자는 주공을 꿈에서나마 만나 뵙기를 갈구하였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오래되었구나, 내가 주공을 꿈에서 만나지 못함이(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한탄하였다.(술이편=述而篇) 공자의 한탄은 타락의 극을 향하던 인륜과 난세의 혼란에 대한 구도자로서 그의 구세(救世) 희망과 실망감을 동시에 드러낸 것이다.


송도 기생 황진이(黃眞伊)는 서화담(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3절(三絶)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황진이에게는 평소 꿈에 그리던 님이 있었나 보다. 그녀는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내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라고 읊었다. 평시에는 도저히 만남을 이루기 어려워 꿈속에서나마 간절하게 바랐던 님을 길이 어긋나 만나지 못한 황진이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도 꿈의 소재가 되기에 족할 것이고, 이루어진 사랑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이 갈망의 농도에서 더 진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근세에 ‘태평천국’을 일으켜 한때 크게 민심을 얻어 50여 년간 북경정부를 뒤흔든 홍수전(洪秀全)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몇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연달아 낙방한 후 실의로 병을 얻었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를 승천하게 하여 천부(天父) 상제(上帝)앞으로 그를 인도하였다........ 너를 예수의 동생으로 정하고 땅으로 내려보낼 것이니 세상을 구제하는 구세주가 되라........ 상제의 명을 받고 절하고 물러나오다 옆을 보니 공자(孔子)도 끌려와 있었다. 상제가 공자에게 그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세인들이 상제를 몰라보게 한 죄가 크다고 그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자 공자는 일일이 반박하였다....... 상제가 천사로 하여금 채찍을 가하게 한 후, 상제가 다시 그의 잘못을 열거하자, 그제야 공자는 엎드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태평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는 정치신화가 바로 꿈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홍수전은 병들어 눕기 전에 당시 야소교 선교사들이 중국 남방지역을 포교하면서, 중국어로 번역한 ‘권세양언(勸世良言)’ 이라는 간단한 기독교 교리서의 내용을 얻어 읽고 책속의 ‘너’를 모두 자신을 지칭하는 줄로 착각하였다. 꿈이 정치신화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이 점에서는 한고조 유방(劉邦)을 위시한 중국의 많은 황제와, 고려태조 왕건(王建)이나 조선태조 이성계(李成桂)도 예외가 아니다. 성공했으면 왕조실록에 정사로 기록되었을 정치신화이지만, 실패하면 홍수전의 ‘꿈 이야기’가 된다.


꾸고 싶지 않은 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몸서리쳐지는 일은 모두 한두 가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일은 꿈에 나올까 두려운 법이다. 군복무를 마친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꾸어 보았음직한 것이 바로 징집영장이 또 나오는 꿈이다. 비록 꿈속의 일이지만 이미 필한 군대를 또 가라하니 이보다 더 억울하고 낙담스럽고 발버둥치고 싶은 경우가 또 있을까? 그런 꿈을 꾼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다.


또한 징그러운 뱀들이 우글거리는 꿈을 꾼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땅꾼을 제외하고는 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이라던가, 타오르는 정력을 해소할 길이 없어 참아서 억누르고 있으면 뱀 꿈을 꾼다는 꿈 해몽을 본 적이 있다. 꿈에 뱀이 나오는 것도 별로 달가운 꿈이 아니다. 용(龍)이라면 몰라도........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은 곧 인생’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상 현실은 달리 보면 모두가 꿈일 수도 있다. ‘꿈이 생시고 생시가 곧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야기가 곧 꿈이라는 생각을 하며 삶을 영위하는 태도는 어떨까?


사람의 덧없는 일생은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과도 같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또한 인생은 일장춘몽이고, ‘남가일몽 (南柯一夢)’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만일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는 괴로운 처지에 놓인다면, 그건 잠시 꾸는 한편의 악몽이라고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되지 않을까? 또 현실에서 갈망하고 지극히 희구하는 바를 꼭 이루지 못하더라도 인생은 한편의 꿈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네 인생살이가 보다 더 시가적(詩歌的)인 것이 되지 않을까?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는 현실의 고통스런 인생을 시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음을 말한 것이며, 야곱이나 요셉성인이 꾼 꿈은 종교적 계시가 강한 꿈이고, 공자가 꾼 꿈은 일생동안 포부로 품은 이상에 대한 희망이 담긴 꿈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평소 거룩하고 정성스러움이 몸에 베인 삶을 살아간다면 꿈에서나마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수면 중 1/4의 시간은 꿈으로 채워지는 시간이라니까.......


그리고 이왕 꿈을 꾸게 된다면 낮 동안에 좋은 생각을 많이 해서 밤에는 흉몽(凶夢)이나 악몽(惡夢)이 아닌 복이 굴러올 길몽(吉夢)을 많이 꾸도록 하자. 오늘도 편안한 밤, 아름다운 꿈을 많이 꾸었으면 좋겠고, 이 글을 읽은 군제대한 남성분들은 오늘 이후로 영장이 또 나오는 꿈을 꾸지 않기를 기원한다.


박 인 수

201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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