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세상이야기 : (25) 막걸리 찬가를 소개합니다.
고대 교수인 오탁번 시인(1943-)의 향토색과 에로시티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재미있는 詩인 것이다. 내가 기억해 낸 오탁번 시인의 첫번째 詩라 너무 인상적이다. 여기에는 “막걸리”가 “제 격”이고 “딱”이라면 또 “막걸리”를 또 올리게 된다. 그래서 오탁번 교수였으며 시인인 그분을 존경과 함께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굴비/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 장사가 지나갔다.
굴비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 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 보았다.
그거 한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豊年)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 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 않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이 시(詩)는 “겨울 강”이란 시집에 수록된 오 탁번 씨의 “굴비”란 제목의 시(詩)다. 오탁번 씨는 참 대단한 입담을 지니고 있다. 자칫 잘못 들으면 그저 홍당무가 되어 버릴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태연하게 역어 낼 수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더구나 웃음이 절로 나오면서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것을 변주(變奏)해내는 실력이라니! 굴비는 음담패설(淫談悖說)이다. “항간(巷間)의 음담(淫談), 얼마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라고. 음담패설(淫談悖說)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그래서 오탁번 씨는 시인(詩人)이다. 음담에 묻어 있는 삶의 곡진(曲盡)함까지 한눈에 통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마음과 그 마음에 목이 메고 마는 사내의 이야기는 해학(諧謔)과 웃음으로 가득 찬 이야기에 전혀 엉뚱한 활기(活氣)를 불어 넣는다. 막걸리 또 한잔 먹어야 되겠다.
아내가 굴비를 얻어 온 내역을 알고도 굴비를 맛있게 먹고, 그저 퉁명스럽게 볼 맨 소리를 하는 사내. 그리고 며칠 후 굴비가 다시 밥상에 올랐을 때는 결국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는 사내. 사연이야 어떻든 가난한 산림과 굴비에 얽힌 이야기는 사내와 계집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참으로 진실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야기는 허구(虛構)이고, 웃고 즐기자고 누군가가 만들어 낸 어른들의 우스개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음담(淫談)에도 삶의 진실은 있는 것이다. 그런 진실 앞에 어슬프게 정조(貞操)나 순결을 들이 대며 힐난(詰難)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웃다가 결국은 울고 마는 이야기, 그런 상식을 초월(超越)해 버리는 역설(逆說)은 이 시인(詩人)의 특유(特有)한 장기(長技)라고 할 수 있겠다.
사내와 계집의 사랑을 묘사하는 두 구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 방아를 찧었다.“와,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에는, 개똥벌레, 베짱이, 소쩍새 등, 온 자연(自然)과 우주(宇宙)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내와 계집의 사랑과 함께 호흡(呼吸)하고 장단을 맞추는 미적(美的)인 승화(昇華)의 경지(境地)가 숨어 있다.
음담패설(淫談悖說)에서 우주의 합창(合唱)을 엮어 내는 그런 파격, 그 파격이 이 시의 깊은 매력(魅力)이다. 결국 웃고 마는 음담패설(淫談悖說), 그러나 감동(感動)의 경지(境地)로 우리를 이끌어 올리는 시라고 하겠다. 이 시는 <시하늘>2003년 가을호에 수록된 시로 어디선가 한번 들었지 싶은 음담패설 즉 와이담이다.시인도 이 시를 발표하면서 제목 옆에 이렇게 설명을 붙여 놓았다. "항간의 음담인데 얼마 전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음담패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바로 오탁번 시인이다. 음담에 묻어 있는 삶의 곡진함까지 한눈에 통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탁번 시인은 이 시로 2002년 미당 문학상 후보로 까지 올랐었다.
오탁번시인은 소설가로도 잘 알려진 참 대단한 입담을 가진 분이다. 자칫 잘못 들으면 그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릴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태연하게 엮어낼 수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미당 서정주님의 시를 읽다가 보면 웃다가 결국은 울고 마는 상식을 초월해 버리는 역설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질마재 신화'의 "상가수(上歌手)의 노래"에서 미당은 똥오줌 항아리를 거울 삼아 염발질(머리 다듬기)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가수의 노랫가락이 하늘의 달과 별까지 잘 비치는 그 똥오줌 거울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하고 너스레를 떤다.
결국 이승을 넘어 저승까지 넘나들었다던 상가수의 노랫가락은 똥오줌 항아리의 더러움을 초월해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파격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오탁번시인의 '굴비'도 이런 단순한 음담을 훌쩍 뛰어 넘은 파격을 지니고 있다. 사내와 계집의 사랑을 묘사하는 두 구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와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에는 개똥벌레, 베짱이, 소쩍새 등 온 자연과 우주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내와 계집의 사랑과 함께 호흡하고 장단을 맞추는 미적인 승화의 경지가 숨어 있다 .
음담패설에서 우주의 합창을 엮어내는 그런 파격이 이 시의 깊은 매력이다.
눈 내리는 마을/오탁번
건너 마을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
보리밭의 보리는 봄을 꿈꾸고 시렁 위의 씨옥수수도
새앙쥐 같은 아이들도 잠이 든다
꿈나라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밤마실 나온 호랑이가 달디단 곶감이 겁이 나서 어흥 어흥 헛기침을 하면
눈사람의 한쪽 수염이 툭 떨어져서 숯이 된다
밤새 내린 눈에 고샅길이 막히면
은하수 물빛 어린 까치들이 아침 소식을 전해 주고
다음 빙하기가 만년이나 남은 눈 내리는 마을의 하양 지붕이
먼 은하수까지 비친다
● 오탁번시인의 시강의와 시인들과의 대화 등등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막걸리와 더불어 말이다.
옛날식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먹고 “막걸리”를 나누고, 옥수수를 구워먹으며 시와 시인과 우리들이 하나가 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제천시 어떤 곳인가 기억이 아련한데, 아직 마룻바닥이 그대로 보전되었고 장작을 때는 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눈 내리는 마을의 이야기꽃을 피웠다. 때마침 눈이 내렸던 까닭에 눈이 내리는 마을이 아니라 눈 내린 마을이었다.
아내는 안해다/오탁번
토박이말사전에서 어원을 찾아보면 ‘아내’는 집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란다
과연 그럴까?
화장실에서 큰거하고 나서 화장지 다 떨어졌을 때
화장지 달라면서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사람,
틀니 빼놓은 물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생일 선물 사줘도 눈꼽 만큼도 좋아하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
있어도 되고 없으면 더 좋을 그런 사람인데
집안에 있는 해라고?
천만의 말씀! 어쩌다 젊은 시절 떠올라
이불 속에서 슬쩍 건드리면
-안 해!
하품 섞어 내뱉는 내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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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글을 보내며 모두 앉아 막걸리를 이야기하며, 가을 이곳의 농장의 감을 수확한 홍시처럼, 벌써 불그레해졌다. 또한 감식초가 좋다고해서, 장건강, 고혈압, 피로회복, 다이어트, 골다공증 예방, 불면증 치료에 좋다고 해서 오클랜드에서 벌써 5년 째 담그어, 막걸리와 더블어 즐기게 된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재미있게 매일 축제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하겠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