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기까지 우리가 달려가야 할 길은 아직 너무도 멀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아직 이 땅의 민중들의 아픔과 절망이 너무 깊다.
그러므로 ‘오, 나의 자랑’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다거나 허리 굽혀 꽃다발이나 바치고 예수를 신격화시켜 찬양하는 것으로 예수에 대해 예의를 다 갖췄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산이다.
예수는 그따위 짓, 예수가 걸었던 그 길의 대열에 서지 않고 다만 예수와 그가 걸었던 길을 신격화하는 걸로 만족하는 우리를 보면서 기막힐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가 걸었던 길 바로 그 길을 나도 걷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다.
공손히 두 손 모아 기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맨주먹 빈손을 불끈 쥐고 압제에 대한 투쟁의 결의를 맹세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17:17~19)
그렇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만사가 해결되리라는 식의 허황한 생각을 한 적이 결코 없다.
예수는 자신의 역사적 실천을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길’(요 14:6)로 이해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원했던 것은 그들도 자기처럼 민중해방 실천에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었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을 신격화된 그리스도로 대상화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제자들에게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 14:12)
라는 유언을 남겼다.
무슨 뜻인가?
예수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른다는 것,
예수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것,
예수로 예수를 넘어선다는 뜻이 아닌가?
오늘 이 땅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자들은 많다.
그러나 예수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르는 신자들은 너무도 적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이 땅에 교회들에 걸려 있는 십자가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교회들은 너무도 적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역사 발전의 걸림돌로 역기능을 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예수! 민중에 대한 예수의 한없는 애정을 보면서 나는 오늘의 나의 삶을 참회한다.
하지만 예수가 걸었던 길 바로 그 길을 나도 걷기까지는,
예수운동에 합류하여 민중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까지는,
아직도 나는 진정한 예수쟁이는 아니다.
참된 인간은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