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나는 믿음과 이성이 상호 적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이성 또한 믿음에 못지않게 인간의 인간다움의 한 본질적 요소인 게 틀림없다. 교리적 진술들이나 성경 해석에 있어서 건전한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왜 그런지 솔직히 물음표를 던지고 깊이 고민도 해 보고 따져 묻기도 해야 오히려 자연스러운 법인데, '오직 믿음'만 강조하면서 이성적인 판단과 탐구적 태도를 간단히 반기독교적인 불신앙의 소치로 여기는 오랜 기독교 전통은 참으로 문제가 있다. 내 자신도 오랜 세월 동안 '마침표' 수준의 저급한 유아적 단계에서 거의 한 발자국도 벗어나 있지 못했다.
믿음과 이성, 신앙과 과학, 창조론과 진화론은 상호 대립되거나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관심 영역과 서술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둘을 조화시키고 상호 보완할 줄 아는 폭넓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는 감쪽같이 속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나만의, 참으로 나다운 고유한 신앙이라는 게 있는가?'
하는 의문이 불쑥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겨우내 얼어 있었던 땅을 뚫고 파릇파릇 봄 새싹이 올라오듯, 지금까지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답답한 교리의 틀에 갇혀 드넓은 신앙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문제의식이 싹텄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앞으로 내가 참으로 철들고 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여태까지 쉽사리 마침표를 찍었던 모든 사항들에 대해 용기 있게 물음표를 던지고 믿음의 참된 의미를 곱씹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가 그리스도 곧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 고백은 또 무엇인가? 타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원천적으로 닫혀 있는가? 사후의 천국과 지옥은 과연 존재하는가? 오히려 이 땅, '지금 여기'에서의 천국과 지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인간적으로 더 성실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 성경은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 하느님의 영원불변의 말씀인가?
성경을 인간의 희로애락의 숨결이 생생히 담긴 고대의 일종의 문학작품으로 읽으면 안 되는가? 기본적으로 성경은 '교리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아닌가? 태초의 창조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느님이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지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느님은 정말로 전지전능한가? 저 아득히 먼 시대의 전설적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그까짓 선악과 하나를 따먹었다는 이유로 모든 시대의 온 인류를 영원한 원죄의 저주 아래 몰아넣는 것은 너무 가혹한 연좌제(緣坐制)가 아닌가? 창세기의 창조와 인간 타락에 관한 보도는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죄성(罪性)에 관한 퍽 의미심장한 신화나 설화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교리와 전통에 짓눌려 있었던 생각과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 우리가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숱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느님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느님의 존재를 무조건 믿어야 하는가? 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하느님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인간에게 참된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인가?
하느님의 존재를 깊이 고민한 끝에 '하느님은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은 이유야 어쨌든 불신앙적 태도인가? 천박한 유신론보다는 진지한 무신론이 오히려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가?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인가, 정반대로 인간이 하느님을 만든 것인가, 아니면 둘 모두인가?… 하느님을 겨냥한 이런 일련의 물음은 당연히 그 물음의 주체인 인간 자신에게도 던져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창세기의 보도는 무슨 의미인가? 하느님이 최초의 사람을 흙으로 빚으신 후 그분의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느님은 인간을 정말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세우셨을까?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행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는가? 전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축복을 받는가?
인간이 짓는 모든 죄들 중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크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고 다른 죄들은 비교적 하찮은 것인가? 인간 예수와 신적인 하느님 존재의 조화와 통일을 말하는 삼위일체론의 함축적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의 삶의 모습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참된 신성(神性)을 발견했던 게 아닐까? 예수가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예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저 사람은 예수와 같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땀 흘려 일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난다"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은가?…
어느새 사십 년 넘게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나는 신앙, 하느님과 예수, 또 인간과 내 자신에 관해 마침표를 찍을 만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솔직히, 나이가 들수록 확신이 서기는커녕 모르는 게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습관이 들여진 마침표 찍기를 거부하고 이제 이런 자유분방한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전통 신앙에 대한 맹목적인 도전이 아니라 바로 그 신앙을 참으로 의미 있고 생명력 있게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마침표에 100퍼센트 만족하는 고분고분 길들여진 신앙, 그래서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인 물음표를 멀리하는 신앙은 유아기 단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