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가 좋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도토리 채취를 금지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다람쥐, 반달가슴곰 등의 야생동물의 먹이감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린 조치라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 저녁시간을 이용해 걷기운동을 하는 보타니의 내 집 근처의 숲 속엔 떡갈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수 백 년은 족히 되었을 이 나무들은 매년 많은 도토리들이 열립니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내 발 밑에 지천으로 굴러 다니는 굵고 실한 도토리들이어서 마음 먹고, 수 10분만 주워도 두 자루는 채울 수 있을 만큼 그 많은 그 도토리들을 한국으로 옮겨다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일어난 한국의 배추시장을 보면서 나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 20불만 주면 한 박스나 살 수 있는 이곳의 노란 속 꽉 찬 싱싱한 배추를 한국으로 보내줄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 친구가 친지네 농장에서 땄다며 단감을 한 바구니 나눠주었고, 달고 아삭아삭한 단감을 먹으며 나는 한국을 또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나갔다가 돌아온 아내로부터 단감 가격을 보고 기절할 뻔 했었습니다. 여기 뉴질랜드에서라면 단감철마다 이웃으로부터 공짜로 얻어 먹었던 단감인데, 그 단감이 한 개에 2천 5백원이 넘었던 것이었습니다.
치즈와 육류, 와인 그리고 과일과 채소에 한해서만은 뉴질랜드가 천국인 것 같습니다. 넘치게 풍부하고, 싸고, 셀 수 없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처음 슈퍼마켓에 갔을 때의 놀라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나 가야 겨우 구경할 수 있는 “외국제 식료품”이 한국의 1/10도 안되는 가격으로 산처럼,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눈을 비볐고, 이게 꿈인가, 여기가 뉴질랜드가 맞긴 맞구나!
그날, 나는 바나나와 오렌지와 치즈를 사느라 가져갔던 돈을 몽땅 다 썼습니다. 이름도 모를 치즈를 수 십 가지나 사오면서 너무나 좋아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뉴질랜드 오기 전 나는 용산 미군부대 후문 근처 골목에서 먹었던 치즈였지만, 기껏 아메리칸 치즈 한 종류이었는데, 그 오묘하고 깊은 맛에 반해 있었던 터였으며, 그러나 미제 치즈 좀 실컷 먹어 봤으면 하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그랬던 나였으니 백 여가지 종류의 치즈가게 앞에서 완전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무슨 종류의 치즈인지 알아도 보지 않고, 가격도 확인하지 않고 마구 장바구니에 집어 넣었던 것입니다. 차돌배기도 쉽게 싸게 사서 구워 먹을 수가 있는 것이 여기입니다.
그때, 나는 식료품 값으로 생활비의 절반을 썼습니다. 얼마나 먹어댔던지 뉴질랜드 온지 몇 달 만에 거의 5 kg의 살이 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배도 어지간히 불렀고 건강상의 이유로, 그리고 살찌는 것이 두려워 이것저것 가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먹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사십 대 초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싸게, 실컷 먹는 재미에 초기 이민자들은 다 겪는다는 고국의 향수를 느낄 사이도 없었습니다.
아주 건강했던 한국 노인 하나가 뉴질랜드 온지 몇 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당시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노인은 한국에서라면 꿈도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싸고 흔한 소뼈와 소꼬리를 사다가 고아서는 몇 년을 하루같이 매일 먹었다고 했습니다. 과하게 섭취한 곰탕국 때문에 콜레스트롤이 갑자기 높아져 합병증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넘치는 자유와 천혜의 풍광, 품질 좋은 교육환경,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정직한 사회제도와 복지 등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뉴질랜드가 좋다지만, 내가 뉴질랜드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그래도 “시장 보는 게 싸서”라는 것 때문입니다. 채소와 과일을 싸게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채소와 과일이 뉴질랜드 보다 오스트랄리아는 10배, 한국은 6배 정도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여기는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높지 않아 살기가 좋습니다. 너무 단순하고 원초적이라고 흉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