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다리야. 다리 아파 죽겠네.-오른발로 중심을 잡아보다가- 다시 왼발로 바꾸어서 중심 잡고 서 있다가 그래도 여전히 다리는 아프다. 오늘 따라 햇볕은 쨍쨍! 뉴질랜드의 초여름 날씨인데 이른 아침부터 웬 불볕이람-- 날씨는 또 왜 그리도 화창한지 눈이 다 부셔서 도저히 더 이상 못 서있겠다.
몇 번씩 하품을 해 대도 지겹고, 팔짱을 꼈다 폈다 해도 지겹고- 원~~ 벌을 설 일이 따로 있지.
2011년 11월 어느 날 아침 우리 동네 브라운스베이 상가에 있는 어느 보석상 앞의 풍경이다. 내 앞뒤로 몇 십 명씩 줄을 서서 있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1짜리 보석 반지와 ‘50% 빅 바겐세일’ 가격으로 보석을 사려고 온 사람들이다.
젊은 아가씨들도 서 있고, 유모차에 애기를 태우고 나온 젊은 엄마도 있고, 뚱뚱한 중년 아줌마도 있고, 또 몇몇 남자들도 서 있었는데 그 키위들 틈에 서 있던 한국 중년 아줌마가 바로 본인이다.
그 전날 그 보석상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만난 젊은이와 럭비 월드컵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바로 우리 딸아이와 같은 해 Rangitoto 고등학교를 다녔고 우리 딸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보석상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내일
특별히 문 앞의 진열장에는 $1짜리 반지도 있고 $10짜리 목걸이도 있고 물론 비싼 것은 몇 천불 짜리도 있지만 특히 $1짜리 몇 개는 미끼 상품으로 손님의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잠시 그 상점 안을 둘러보니 하늘색 빛깔의 파란색 사파이어 목걸이 세트, 정말 아름답다. 그 옆에는 보랏빛나는 자수정 반지와 에메랄드 색의 귀걸이, 크리스탈 장식품, 새빨간 루비 색깔의 반지, 그리고 진주 목걸이 등등...
보기만 하여도 휘황찬란한 저 보석을 가져봤으면...누구라도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의 관심은 저 $1짜리 반지나, 왕창 50% 세일 가격이 붙어 있는 보석일 것이다.
평소에 늦잠 꾸러기인 난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침밥도 먹지 않고
그런데, 맨 앞에 줄서서 기다리던 두 여자가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는데 도통 함흥차사다. 한 번 들어가면 빨리 고르고 나올 생각을 안 하니 원 참..하긴 누구라도 보석 반지 한 개 살 때도 이것저것 구경하고 손에 끼워도 보고 그리고 겨우겨우 결심하고 돈을 지불하려던 찰나에, 또 다른 예쁜 반지가 눈에 띈다면 이내 돌아서는 여자의 마음.. 다시 바꿔 끼어보고..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리라.
어느덧 줄을 선 지가 1시간이 흘러 갔다. 가만히 참고 서 있자니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 앞 뒤의 줄 서 있는 사람에게 눈 도장을 찍고 다시 맨 줄 앞의 그 젊은 총각에게로 갔다.
“아니 다리도 아프고 햇볕 때문에 뜨거워 죽겠는데 이렇게 오래 사람을 기다리게 하면 어떻해요.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들 빨리빨리 구경 시간을 줄이고 어떤 방법을 취해야지요. 지금은 시간 제한을 한다던가…그리고 뭐 더 고르고 싶은 보석은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던지요.”
따지는 내게 그는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더 참고 기다리라고 한다. 이 많은 사람을 통제시키지 않으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안 된다고 하면서 이 방법은 자기 사장의 마케팅 전략 방법이라고 한다.
1달러짜리 10달러짜리에 눈에 꽂혀 들어왔다가 더 예쁜 보석을 발견하고 나면 몇 백 달러 아니 몇 천 달러 짜리도 구매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또 줄을 서 있었는데 내 앞뒤 줄 서 있는 다른 키위들은 잘도 참는다. 불평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또 기다린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두 시간이나 지났다.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보석을 사야 하나 자존심도 상하고 이제 와서 중도 하차 하자니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깝고..어쩌나..갈등이 일었다.
결국 끝끝내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깐 놈의 반지, 목걸이 안 끼고 말지. 내 팔자에 무슨 보석은 보석이람. ”이봐 젊은이! 이런 마케팅 방법은 좋은 판매 전략이 아니야. 아무리 깜짝 판매도 좋지만 사람을 줄 서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 이 방법은 여러 사람의 시간을 낭비시키는 거야. 가서 너의 보스 사장에게 얘기해라. 더 나은 판매 전략을 연구하라고 말이야. 정 모르면 나라도 다른 마케팅 방법을 알려줄게”
따발총같이 쏘아 주고 나와 버렸다.
물론 큰 소리로 말했으니까 줄 서 있던 다른 키위들도 나의 충고를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 아니 이 동양 아줌마는 뭘 따따부따 불평을 하나? 기왕 이렇게 기다린 김에 예쁘고 싼 보석 하나라도 건지지..”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못 먹은 아침을 점심으로 때우면서 그 보석상 욕을 해주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니 다시 궁금증이 일었다. 그 $1짜리 보석은 다 팔렸을까? 누가 사 갔을까? 그리고 그 투명하고 물빛 색깔의 사파이어 목걸이 세트는 누가 사갔나?
난 그 결과가 궁금하여 다시 한 번 그 가게 근처엘 가 보고 싶었다. 조금은 자존심에 신경이 쓰였지만 에라..다시 그 곳에 갔다.
“아뿔사, 이게 웬걸. 아직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애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 있던 젊은 엄마도 아직 그대로 있고, 내 앞뒤에 서 있었던 사람도 아직 그대로 있고 어떤 할머니는 얼마나 다리가 아팠던지 아예 조그만 의자를 하나 도로변에 갖다 놓고 아예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유모차에 앉아 있는 몇 달 된 아기까지도 보채지도 않고 우유병을 빨면서 제 엄마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뉴질랜드 인들의 기다리는 저 인내심은 가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순진한 건지? 미련한 건지? 저 보석 반지를 $1에 살 수만 있다면 - 저 땡볕에 서서 벌을 서듯이 기다리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아닌가 보다.
아마도 우리 한국인들 같으면 아주 예쁜 보석을 정말 왕창 바겐 세일할 수 있다면 우르르- 몰려 들어가서 와글와글, 북적북적 어떤 이는 구경하고 또 누구는 보석을 고르고, 보석 구경하랴, 사람 구경하랴...충동 구매도 하고, 시끌 벅적한 분위기가 또 사람 사는 맛도 나고- 뭐 이러한 풍경이 벌어졌으리라.
그런데 키위들은 사람이 많고 복잡한 분위기에서 한꺼번에 어떠한 대화나 일 처리 하는 상황을 잘 못하는 것 같다. 꼭 못한다 라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많은 분위기에 익숙해 있지 않다고 할까? 우리 한국인은 그 분위기가 시끄럽고 복잡해도 그러한 상황을 빨리 적응하고 척척 처리하는 것이 차라리 쉽지, 조용히 인내하며 오랫동안 기다림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아름다운 보석을 아주 싼 가격에 사고 싶어하는 욕망은 남녀노소 인종과 관계없이 누구나 공통점이란 사실이다. 그 날 아침 괜스레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떨고 들락날락, 또 엄청 바쁜 하루를 보내고 헛물만 켜게 했으니…1달러짜리 보석 반지가 나를 울렸어 내 팔자에 보석은 무슨 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