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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에 목숨을 거는 이들에게

by 박인수 posted Oct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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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에 목숨을 거는 이들에게



........공자왈(孔子曰), 이름이 바로 서지 않으면 의사소통 언어가 모호해지고(名不正則言不順), 의사소통 언어가 모호해지면 세상만사 이루기 힘이 드느니라(言不順則事不成). ..........(논어, 위정편)


그렇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지당한 말씀이다.


공자말씀대로 인간사 모든 만물에는 이름이 있게 마련이고, 그 이름을 소유하는 물건(사람포함)은 이름에 마땅히 값하는 사회적 역할이 있어야 한다.


공자에서 유래한 이 사상이 유가의 정명(正名, rectification of name) 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후, 유가의 정명사상은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나타나 세상사의 대의명분과 시비선악을 판가름 하는 기준으로 굳건하게 역사에 뿌리를 내렸다.


공자와 동시대 철인인 노자(老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상만사 모든 시비, 장단, 미추, 고저, 선악의 분쟁은 공자가 확고하게 세우려고 한 이름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노자왈(老子曰), ‘이름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영원불변의 이름이 될 수가 없고........, 우주의 시초에는 아직 이름이 없었으나 이름이 생겨난 후 세상 만물의 모든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라는 만고진리 명언을 남겼다.(노자 도덕경)


이것이 유가의 명분주의(名分主義)에 대한 도가의 반명주의(反名主義)이다. 동양에서는 유가 도가 외에, 불가(佛家)의 무명(無名) 사상이 여기에 더해져 후세사람들에게 이름(명분, 명칭, 명성, 명예, 명함........)등등에 관한 한 ‘노이로제’에 걸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눈뜨고 밥술 깨나 먹는 사람치고 ‘어떻게 하면 역사에 개인의 이름을 남길까’. ‘어떻게 하면 역사에 가문의 이름을 남길까’, 밤낮 이런 것만 생각하지 않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무덤 앞의 수많은 비문(碑文)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역사에는 사람 죽이는 일이 많아 진 것도 사실이다.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집권 때, 충신 사육신을 찢어 죽이는 것도 모자라 연좌로 죽인 사람의 수가 1,300 명을 넘었다. 후세 사람들은 ‘죽인 한명회’나 ‘죽임을 당한 성삼문’을 같이 기억하지만, 한명회에게는 침을 뱉고 성삼문은 높이 추앙한다. 청사유명(靑史留名)이라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하는 까닭이다.


이름에 관한 논쟁은 ‘명분주의 병’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때 중국과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실은 유럽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다. 서양 중세철학 1천년을 풍미한 최대의 논쟁인 ‘보편주의’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중세 스콜라철학의 최대 논쟁이었던 유명론(Nominalism)과 실제론(Realism)의 대립에 관한 논쟁도 플라톤의 ‘이데아’ 논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피지스(physis)와 노모스(nomos) 논쟁으로부터 제기된 것인데, 여기서 세론할 것도 없고 지면관계상 그럴 필요도 없다. 근대이후 서양 사람들은 그런 ‘쓰잘데 없는’ 논쟁에는 소수의 철학자 외에 일반인들은 관심조차 기울이지도 않았다.


한국인의 명분주의 바이러스의 특징에 대하여 본인이 한인회 홈페이지에 쓴 칼럼 ‘후천성 배앓이 증후군‘이라는 글이 한 편 있다. 필요하다면 읽어보시고, 나를 욕하려면 마음대로 하시라. 어차피 본인은 실명과 사진과 이력이 공개된 마당에 겁나는 것은 없으니까.......


다시 우리문제로 돌아와 보자. 중국역대의 내노라하는 집권 어용학자와 사상가들은 유가의 명분주의에 집착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그들 자신, 즉 ‘중화(中華) 또는 화하(華夏)’를 안정시키고 주변의 ‘야만족(夷狄, 이적 즉 오랑캐)’ 들을 정복하여, 천하를 ‘중국 중심적 동아시아 세계질서’(sino-centric East Asian world order)체계로 얽어매어 자손대대로 유지시키는가에 있었다.


그런 야심은 오늘 날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 단적인 하나의 예는 요동반도 압록강 하류의 국제도시 단동(丹東)을 보면 된다. 붉을 단(丹) 자는 즉 중국공산당이 한반도를 적화시키는 전초 도시란 뜻이 속에 숨어 있고, 단동의 옛 이름인 안동(安東)의 편안할 안(安)자는 정복하여 동쪽변방을 안정시킨다는 숨은 뜻으로, 고구려 멸망 후 당(唐) 나라 때부터 중국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거기에 설치하였다. 똑바로 뜨고 보지 않으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흉계가 도사리고 있다.


잘난 채 해서 매우 송구하지만, 화이지변(華夷之辨, 중화와 오랑캐 구분)에 관련한 중국민족주의 분야연구는 나의 중국정치사상사 전공중 주 전공이다. 나는 동서고금 철학사에 나타난 ‘이름과 관련한 논쟁’은 한 번 씩 섭렵한 적이 있고, 그것이 역사학의 학문 방법론적(methodologically) 시각으로는 매우 중요하지만, 인간과 사회와 우주를 존재(인간)의 유기적인 합목적성으로 파악하는 목적론적(ontologically) 입장에서는 별로 도움이 없다는 이치를 깨닫는데, 장장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름은 실질의 껍데기일 뿐이다(名者, 實之賓也)’


‘이름은 모든 분쟁의 도구이자, 사람의 덕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名者, 智之爭也, 德之軋也) (독자께서 모두 나의 견해에 동조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중국인(짱꼴라) 들이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 호전적인 북방 오랑캐(흉노, 돌궐, 거란, 몽고) 족들에게는 아름다운 공주를 그들 족장에게 시집보내 족장을 사위로 삼은 통혼정책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재물을 매년 보내는 원조정책으로 무마하였고, 기질이 굽힐 줄 모르게 강건한 남방의 베트남과 남만(南蠻) 들에게는 의(義)의 강조를 통한 상호불가침 약속 등 융화정책으로 무마시키고, 자꾸 해안을 노략질하면서도 이지적 사변적인 쪽에 관심이 많은 족속들인 바다건너 왜(倭)에게는 지(智)의 방법을 통해 중국문화를 전수발전 시키게 하였다. 베트남이 오늘까지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 같은 최강국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성을 자랑하고, 일본이 서양근대 문명을 가장 빨리 수용하여 근대화에 성공한 역사적 까닭이 그런 것이다.


자, 이제 남은 것은 바다동쪽 해동(海東) 고려이다. 중국인들은 생각하였다. 고구려를 무력으로 침범했다가 혼 줄이 한 번 난 이후로, ‘저들은 무엇으로 다스리면 가장 좋을까?.....’ ‘그렇지, 역사책에 보면 그들은 옛 부터 예(禮)를 숭상하는 족속(族屬)이라고 나와 있지.’


그래서 공자의 정명사상을 주자(朱子)의 ‘명분주의’로 살짝 변모시켜 조선 땅에 전파시켜보니 그 방법은 과연 적중하였다. 오히려 중국인들이 놀랄 정도로 효과 만점이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죽으나 사나, 5백 년 동안 명분타령으로 일관하였다.


유교의 인·의·예·지는 그렇게 중국과 주변 이민족으로 전파되어 갔고, 우리 민족에게는 명분싸움이 그칠 날 없이 민족의 장래와 앞날을 결정짓는 방향으로 ‘민족적 유전인자’로 역사에 남아 있다. 나는 남한과 북한의 대립도 크게 보면 정치적 ‘이데올로기상의 명분싸움’ 이라고 생각한다. 실질은 남북한 주민이 공히 밥 굶지 않고 잘사는 것일 진대 말이다.


예와 결부시킨 예송(禮訟) 논쟁은 왕비(인현왕후)의 장례식에 입는 상복(喪服) 소매길이를 둘러싸고 편을 갈라서 싸우더니, 중국인들이 처음 생각지도 않았던 우주(天)와 인간(人)의 논의로 확대발전하여 철학적으로 파고들어 이(理)와 기(氣),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논쟁으로 날밤이 지새는 줄 모르고, 결국 그것이 정치적 당파싸움과 붙어서 남북노소로 갈라져 또 날밤을 지새우며 싸우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멸의 길로 빠져들었으니 ‘짱꼴라’들 보기에 얼마나 유쾌하고, 통쾌하고, 짜릿했을까?


‘이·기·사·칠· 이발 기후· 기발이후, 이선기후, 기선이후, 이기호발,........’ 한 톨의 쌀조차 생산되지 않는 저들의 꼴불견 이론논쟁을 보면서, 전라남도 강진 땅 외진 유배지에서 백성의 도탄과 나라의 장래에 울분하면서 <목민심서>를 집필하던 다산(茶山)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정약용의 그 고뇌를, 오늘 뉴질랜드 땅에서 명칭이 ‘대표회의니, 아니니, 자문회의가 어떠니, 저떠니, 저떠니 어떠니, 명칭에 대표성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물고 늘어지는 도베르만 견공(犬公)들이여! 그대들은 유배지에서 울분을 삼키던 다산 정약용의 심경을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명칭과 명분문제로 그렇게 떠들고 골몰할 시간과 관심과 애정이 한인회에 있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광역 오클랜드 지역에 우리가 ‘짱꼴라’라고 욕하는 중국인들의 각종단체 자체회관이 몇 개나 있는지, 들고 다니는 그 성능이 좋은 카메라로 가서 직접 찍어 게시판에 한번 올려 주시기 바란다.


오호라, 슬프고 가련하다(嗚呼, 悲夫, 可憐呼......)


그대 그리고 나,


아깝구나, 도베르만 견공들의 짧은 지혜여! (可惜呼, 犬公之小聰明!)



박 인 수

(2001,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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