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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로 마음을 굳힌 뒤에도 어떤 길로 가야 할지는 쉽게 정해지지 않습니다. 합의해서 조용히 끝낼 수 있을지,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지는 당사자의 의지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와 다투는 내용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혼상담 자리에서 가장 먼저 가늠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갈림길입니다. 어느 경로가 맞는지에 따라 준비할 것과 걸리는 시간, 감당해야 할 부담이 달라지므로, 각 경로의 특징과 선택의 기준을 미리 알아 두면 도움이 됩니다.
협의이혼은 부부가 헤어지는 것과 그 조건에 모두 뜻을 같이할 때 선택하는 길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법원에 신청하고, 법에서 정한 숙려기간을 거친 뒤, 정해진 날에 출석해 의사를 확인받으면 됩니다.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양육자와 양육비, 면접교섭에 관한 합의서를 내야 하고 법원이 그 내용을 살핍니다. 이혼 사유를 따지지 않고 비용 부담이 적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협의이혼에는 놓치기 쉬운 빈틈이 있습니다. 법원이 확인하는 것은 이혼 의사와 자녀에 관한 사항이고,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와 위자료는 확인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재산 문제를 말로만 정하고 이혼한 뒤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다투는 일이 흔합니다. 협의이혼을 택하더라도 재산과 위자료에 관한 합의는 구체적인 문서로 남기고, 가능하면 공증이나 법원의 조정 조서처럼 강제로 이행시킬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협의의 길이 막히는 경우는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상대방이 헤어지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경우, 헤어지는 데는 동의하지만 조건에서 차이가 큰 경우, 상대방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첫째 경우에는 법이 정한 이혼 사유가 있는지가 핵심이 되고, 둘째 경우에는 다투는 항목이 재산인지 자녀인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며, 셋째 경우에는 보호 조치와 함께 곧바로 법원 절차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조정은 협의와 재판 사이에 놓인 길입니다. 법원에 조정을 신청하면 조정위원이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합의점을 찾도록 돕습니다. 합의가 이루어져 조정 조서가 작성되면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기므로, 숙려기간 없이 이혼이 성립하고 재산과 양육비 약속도 강제로 이행시킬 수 있습니다. 헤어지는 데는 뜻이 같고 조건만 조율하면 되는 부부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마주 앉기 어렵다면 대리인을 통해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은 합의가 불가능할 때 남는 길입니다. 소장을 내고, 상대방이 답변하고, 여러 차례 기일을 거치며 주장과 증거를 주고받습니다. 자녀 문제가 다투어지면 가사 조사관이 양육 환경을 조사하고, 재산이 다투어지면 금융기관에 대한 조회와 감정이 이루어집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서로의 잘못을 드러내야 하는 과정이어서 정서적인 소모가 큽니다. 다만 재판 중에도 조정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이 많으므로, 소송을 시작했다고 해서 끝까지 판결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혼 사유의 입증 가능성을 냉정하게 따져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부정한 행위, 부당한 대우, 악의적인 유기 같은 사유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자료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뚜렷한 사유 없이 성격 차이나 애정의 상실만을 이유로 하는 경우에는, 혼인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탄되었다는 점을 오랜 별거나 그간의 경위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혼인이 깨진 데 주된 책임이 있는 쪽의 청구는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경로를 고를 때는 다툼의 크기와 시간의 가치를 함께 저울질해야 합니다. 재판에서 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몫과, 그것을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기간과 비용, 그동안 자녀가 겪을 불안을 나란히 놓고 보아야 합니다. 양보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 나은 사안도 있고, 양보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되는 사안도 있습니다. 자녀의 양육자 지정이나 주거의 확보처럼 삶의 기반이 걸린 문제는 쉽게 양보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혼상담 과정에서 꼭 확인해야 할 것은 지금 당장 취해야 할 조치가 있는지입니다. 상대방이 재산을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가압류나 가처분으로 묶어 두어야 하고, 별거 중 생활비나 양육비가 끊겼다면 재판이 끝나기 전에도 임시로 지급을 명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습니다. 폭력의 위험이 있다면 접근을 막는 조치가 먼저입니다. 이런 조치는 어느 경로를 택하든 협상의 여건을 바꾸어 놓습니다.
상대방과 협의를 시도하는 동안에도 재판을 대비한 준비는 병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협의가 깨질 경우에 대비해 재산 자료와 혼인 생활의 경위를 보여 주는 자료를 모아 두고, 협의 과정에서 주고받은 대화도 보관합니다. 협의 중에 무심코 써 준 각서나 메시지가 나중에 불리한 자료가 되기도 하므로, 문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그 의미를 확인해야 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는 쪽이 협의에서도 무리한 요구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어느 길이 옳은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가장 격한 순간에 경로를 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각 경로가 가져올 결과를 구체적으로 알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다툼의 핵심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지를 정리해 보면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한결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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