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죄가 되는 돈과 빚으로 남는 돈

by 박현동 posted Oct 0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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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아 둔 돈을 잠시 썼다가 돌려놓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면 빌린 돈을 못 갚은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생깁니다. 횡령죄는 바로 그 차이, 즉 그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은 그것을 보관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그 돈이 누구의 것이었고 어떤 관계로 건네졌는지가 이 죄의 성립을 좌우합니다.
먼저 재물의 소유가 다른 사람에게 있어야 합니다. 돈을 빌린 경우 그 돈은 빌린 사람의 소유가 되므로 갚지 못해도 이 죄가 되지 않고 민사 문제로 남습니다. 반대로 특정한 용도로 쓰라고 건네받은 돈, 매매 대금을 받아 전달하기로 한 돈, 회비나 공금처럼 목적이 정해진 돈은 건네받은 사람이 소유자가 아닙니다. 그 돈을 정해진 용도 외에 쓰면 보관자가 타인의 재물을 자기 것처럼 처분한 것이 됩니다.
소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계약의 이름이 아니라 실질로 판단됩니다. 같은 송금이라도 용도가 정해져 있었는지, 그 용도가 지켜질 것이라는 신뢰 아래 건네진 것인지를 봅니다. 채권과 채무만 남기는 거래였다면 민사 문제이고, 특정한 재물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위탁된 것이라면 형사 문제가 됩니다. 이 구분이 애매한 사건에서는 당시의 대화와 문서에 용도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자료입니다.
보관자 지위는 위탁 관계에서 생깁니다. 위탁은 계약뿐 아니라 사무 관리, 관습, 신의칙에 의해서도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잘못 송금된 돈을 받은 사람은 송금인과 아무런 계약이 없어도 그 돈을 돌려줄 관계에 있으므로 보관자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착오 송금된 돈을 임의로 쓴 경우 이 죄가 문제 됩니다. 반대로 위탁 관계 자체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보관자 지위가 부정되기도 합니다.
부동산에서는 등기 명의가 기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부동산을 명의만 맡아 둔 사람이 이를 처분하면 보관자의 처분으로 다루어지는데, 명의신탁의 종류에 따라 이 죄의 성립이 달라진다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다투어집니다. 부동산 사건에서는 명의를 맡긴 경위와 형태를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불법영득의사도 필요합니다. 보관자가 재물을 자기 것처럼 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하며, 단순히 반환이 늦어진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만 나중에 갚을 생각이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이 의사를 부정하지 못합니다. 용도 외에 사용한 순간 이미 영득의사가 있었다고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위탁자의 이익을 위해 처분했거나 위탁자가 사후에 추인할 것이 명백했던 사정은 영득의사를 부정하는 자료가 됩니다.
피해 회복의 시점도 중요합니다. 고소 전에 전액을 돌려놓았다고 해도 이미 성립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처벌의 무게를 정할 때 크게 참작됩니다. 반대로 고소 후에 일부만 갚고 나머지를 미루면 참작의 정도가 줄어듭니다. 피해자와 합의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받아 두면 사건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족 사이의 사건은 특별한 규정이 적용되어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처벌이 면제되거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규정은 피해자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기준으로 하며, 회사나 단체의 재물이 관련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업 관계에서 생기는 사건도 많습니다. 동업 재산은 동업자 전원의 공동 소유이므로, 한 동업자가 동업 재산을 자기 몫이라며 임의로 처분하면 다른 동업자에 대한 관계에서 이 죄가 문제 됩니다. 자기 지분만큼은 자기 것이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습니다. 동업이 끝나 정산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정산 전에 임의로 가져가면 같은 문제가 생기므로, 정산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합니다.
판매 대금이나 수금액을 둘러싼 사건도 흔합니다. 물건을 위탁받아 팔고 대금을 보내기로 한 사람이 대금을 다른 곳에 쓴 경우, 그 대금은 위탁자의 것이므로 보관자의 처분이 됩니다. 반면 물건을 사서 되파는 관계였다면 판매 대금은 자기 것이고 채무만 남습니다. 거래의 형태가 위탁 판매인지 매매인지가 죄의 성립을 가릅니다.
고소인 쪽에서도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재물을 맡긴 경위와 용도를 보여 주는 문서, 송금 내역, 상대가 용도 외에 사용했다는 정황 자료를 갖추어야 수사가 진행됩니다. 단순히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고소하면 민사 문제로 판단되어 사건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위탁 관계를 보여 주는 자료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따라서 횡령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정리할 것은 그 재물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자신이 어떤 근거로 그것을 보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용도 외에 쓴 시점에 어떤 생각이었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자료로 설명되면 죄의 성립 여부와 무게가 함께 정리됩니다.
고소를 당한 뒤 피해자와 연락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변제 의사를 밝히는 것은 좋지만,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취지의 문자나 각서를 성급하게 보내면 나중에 성립 자체를 다투기 어려워집니다. 변제 협의와 사실 인정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표현을 가려 쓰고 필요하면 변호인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낫습니다.
조사에 임하기 전에 송금 내역, 계약서, 당시 대화 기록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기억에 의존한 진술은 자료와 어긋날 때 신뢰를 잃게 되므로, 자료를 먼저 보고 진술을 정리하는 순서가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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