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주님. 오클랜드에서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의 사랑과 나눔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지금 우리 오클랜드의 주변을 한번 살펴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클랜드의 삶의 문제의 절반은 돈 때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을 통해 언제나 크리스챤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명령하셨으므로, 크리스챤들에게 서로의 나눔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서로의 나눔은 준엄한 하나님의 계명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오클랜드의 세상에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마냥 부만을 축적할 명분이 없습니다. 우선 돈을 모아 사업을 성장시키고 나중에 크게 성공하면 가난한 이웃들을 돕겠다는 약속은 대부분이 거짓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공한 일부 부자 한인들도 자신의 부를 다시 털어서 전심으로 가난한 한인들을 돕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고, 부를 늘려서 자녀들에게 대물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극소수일지라도 부를 사회환원에 적극 참여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 깨끗하든지 더럽든지 부자는 그냥 부자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깨끗한 부자가 되라는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한 부자 청년이 왔습니다. 그는 율법을 아주 열심히 지켰으니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깨끗한 부자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근심하며 돌아 갔음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오클랜드의 주변에 돈이 없어 생계를 걱정하는 한인들도 있었습니다. 학비보조가 충분치 않아 꿈을 포기하는 한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산세를 적기에 마련하지 못해 쩔쩔하며 고생하는 한인들도 있었습니다. 생활비가 부족해 우울한 한인들도 있었습니다. 아파도 내색을 못하는 노부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건을 모른 체하여도 정말 깨끗한 부자일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돈을 더 모아서 그들을 돕는다는 것이 깨끗한 부자일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 크던 작던 기업인들에게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들은 큰 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오직 부를 관리하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며, 주식을 늘려 간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닌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들은 계속 사치하고, 회사를 확장하여 갈수록 대형화하는 반면에, 사업 확장을 진지하게 절제하며 얻어진 이익과 늘어난 주식을 사원들이나 저소득층과 성실하게 나누는 경우는 드물었고, 생존 경쟁만 주장하는 경제 논리에 따라 재산 증식만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취하면 도리어 병이 나는 이치와 같았으며,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취해야 좋았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재물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나누던 만나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의 과소유를 금하셨으며, 그래서 만나가 꼭 필요하고 좋은 양식이지만, 홀로 너무 많이 취해서 그것을 축적하면 상하게 하신 것임을 기억했습니다. 과소유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 가는 목적에 위배된 불순종이었습니다.
주님. 우리 크리스챤들이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 벌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더욱이 올바른 절제와 절약으로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함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우리 크리스챤들이 돈을 많이 축적하여 부자가 될 수 있었다면 그 돈을 나눌 곳이 별로 없었다는, 인색한 변명을 늘어 놓지 않는 참된 우리가 되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살아 가는 거리마다 동네마다, 가난과 아픔으로 지친 이웃들의 그늘진 얼굴을 보았다면,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참된 크리스챤들로서, 오클랜드에서 예수님의 계명이 우리의 사랑이었고 우리의 나눔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